▲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구미시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누출 피해가 확산되자 정부가 사고발생 12일 만에 이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불산가스는 구미공단뿐 아니라 전국의 화학공단에 대량으로 저장 유통되고 있는 유독물질이다.

문제는 유독물질과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원자력 발전소도 가동이 중지되는 사태가 빈번해지고 있으며, 이웃나라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국가적 위기 사태를 겪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일찍이 경고한 바 있듯이 산업화를 통해 구가한 물질적 풍요가 사회를 총체적으로 위협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사태는 과학기술 신화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위험사회론'이 사회의 물적 토대와 외적 환경의 위기를 경고한 것이라면, 최근 우리 사회의 몇 가지 징후는 사회의 '내부'가 위기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의 내부란 가정과 학교처럼 개인이 보호되고 교육받는 공간이다. 그중 가족과 가정의 위기는 가장 심각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1990~2002년간 의도적 살인사건으로 죽은 여성 가운데 46.4%는 배우자이거나 내연·동거관계인 남성의 손에 살해당했으며 이들 상당수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폭행·학대받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밝힌 가정폭력 통계도 충격적이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가정이 전체 가정의 53.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두 집 중 한 집에서 가정 폭력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폭력의 발생수도 최근 10년간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초·중·고교생의 자살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이 가정불화(37.5%)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끔찍한 성폭행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어 시민들은 뉴스 보기가 두렵다고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성폭행 가해자의 과반수도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가족이나 친인척, 연인, 직장 상사와 동료, 이웃사람과 같이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역시 '내부'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지표이다.

개인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족과 집이 갈등과 폭력으로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가족을 둘러싼 바깥 고리인 학교와 일터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을 주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학교와 직장은 오직 성적과 성과를 기준으로 줄 세우고 있어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만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실업률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가정 경제의 기반도 취약해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며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이른바 '하우스 푸어' 문제도 가족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수입의 대부분을 보육비와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어서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하다.

'내부'의 위기를 초래한 일반적 원인 중의 하나는 도시화 현상일 것이다. 가족과 집이 위치한 이웃과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한국사회가 압축 성장하면서 새로운 가족관이 정립되지 못한 문화적 지체현상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상당수의 남성은 여전히 봉건시대의 유산인 가부장적 사고로 가족들을 바라본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는 서로 독립적이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정서적 경제적인 동반자로 여겨야 하지만 소유하고 지배하는 대상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유물처럼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가장 작은 사회이지만 우리 사회의 미니어처이다. 가족이 겪고 있는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우리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위기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이다. 우리의 대선 후보들이 이런 '내부'의 위기, 서민 가정이 처해있는 위기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진검 승부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