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
세종대왕은 세종 25년인 마흔일곱 살 때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세종 28년인 쉰 살에 반포하고 32년의 통치를 끝으로 쉰네 살에 운명했다. 인류의 최고 발명품이라는 문자, 그 중에서도 최고라는 문자가 생애와 통치 막바지에 이루어진 것이다.

학문 차원으로만 본다면 오랜 세월 천문학, 음악학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한 연구와 섭렵을 바탕으로 정음학을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훈민정음 창제가 이루어졌다. 세종은 과학자이자 음악가였으며 언어학자였다.

다양한 분야 지식 바탕
현실 문제 해결해나가는
사람이 '세종형 인재'
이과·문과의 경직된 구분
입학사정관제·독서논술교육
융합형지식인 키우는 걸림돌

세종의 이러한 업적을 통해 세종형 인재 유형을 설정할 수 있다. 세종형 인재는 분파적인 지식이 아닌 융합형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우리의 꿈과 이상을 이뤄가는 사람이다. 융합형 지식은 여러 가지를 서로 연계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합치는 통섭식 지식이다.

훈민정음은 통섭 지식과 통섭형 인물이 아니면 창제가 불가능한 문자였다. 우리는 15세기에 위대한 통섭형 지식인이 있었기에 호사스런 문자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통섭식 융합형 지식인을 키우는 데 세 가지 큰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지나치게 경직되게 나누는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문과와 이과를 유별나게 나누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학생들의 진로 지도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로인한 부작용이 더 크다고 본다.

문과와 이과를 나누게 하는 기준도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면 이과, 국어를 잘 하면 문과 식의 지나친 편의주의가 넘친다. 우리가 흔히 과학 시간에 배우는 진화론만 하더라도 통섭식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굳이 우리 교과 식으로 얘기하면 역사 지식과 과학 지식을 철저하게 연계시켜야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정치적,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이해해야 하고 다윈의 적자생존설은 산업 발달 등과 연계시켜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라마르크는 왕실 식물원 책임자였다. 당연히 혁명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할 처지였지만 혁명군은 오히려 막대한 연구비를 주며 라마르크를 지원한다. 특정 개체의 노력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라마르크의 생각이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세력들의 사고방식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도 가고 산업 혁명의 발전으로 시스템이나 환경 변화가 중요한 시대가 열리고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역사에서 멀어져 갔다. 우리처럼 이과 문과를 지나치게 나누는 교육에서는 이런 식의 진화론의 실체와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 걸림돌은 입학사정관제다. 입학사정관제는 획일적인 교과 성적이나 수능 성적이 아니라 바로 이런 통섭형 인재를 많이 뽑는데 활용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여러 대학 입학사정관들을 사적으로 만나 보니 과학 경시대회와 독서논술 대회에서 동시에 상을 받았다든가, 이과 쪽 진로를 문과 쪽으로 바꿨다든가 하면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매우 불리하거나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일찌감치 중학교 때 꿈을 정하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증명해야 합격에 유리하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인재도 필요하다. 그러나 중학교 때는 과학자를 꿈꾸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문학가로 바꾼 학생의 고민과 도전 정신은 왜 존중받지 못하는가. 꿈과 진로는 바뀌면 안 되는 것인가. 싸이가 줄기차게 경제학도로서의 길을 밀고나갔던들 강남 스타일이 어찌 가능키나 했을까.

세 번째 걸림돌은 입시에 좌지우지 되는 독서·토론·논술 교육 현실이다. 독서·토론·논술 교육은 궁극적으로는 범교과 교육으로 누구나가 모든 교과에서 꾸준히 교육 받거나 실천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우리는 논술 보는 대학에 가거나 토론 대회 나가려는 학생들만 그런 교육을 받는다.

세종형 인재는 팔방미인형 인재가 아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활용하면서도 어느 하나에 몰입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형이다. 이런 인재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교육과 사회 제도 등을 확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