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대학교에서 4년 동안 스페인과 중남미 시를 가르친, 그의 말로는 '실패한 시인'인 실버 교수는 동양에 관심이 많고 궁도도 오랫동안 수련한 신사 중의 신사이다.
그래서 시인이고 신사인 나의 오랜 친구가 올 수 있는 가장 좋은 달은 시월이라고 생각한다. 시월은 나의 시에서 말하듯이 '하늘의 친척'들이 몰려오는 달이기 때문이다.
방한 앞둔 40년지기 외국친구
한국의 아름다운 시기 묻자
망설임 없이 시월이라 일러줘
누구나 하늘보며 낙엽 밟는
가을의 가장 좋은 달
쓸쓸한 정취도 한 몫
스페인에서 10여년 넘게 살았지만 거기 가을은 우리 가을처럼 아름답지 않다. 높은 하늘보다는 비에 젖은 날이 더 많다. 어디에도 낙엽이야 없을까마는 날씨 좋은 날들보다 구름이 더욱 시끄럽고 또한 계절이 짧다. 마드리드의 가을에 비하면 서울의 가을은 날마다 환호성을 받을만큼 쾌청하다.
맑은 하늘에서 금방 희소식이라도 날아들것 같다. 시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하늘을 보고 낙엽을 밟는다. 이 낙엽을 밟고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그래서 나의 '시월'이란 시는 "하늘에서 걸려오는 전화벨소리/떼각떼각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소리/사무실이 바닥보다 창문 높이로 올라서고/벽에서는 횟가루 대신 구름냄새가 난다"로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천상배필(天上配匹)'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있다면, 시인의 생각에 그녀는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시월에 올 것이다. 석류처럼 터질듯한 웃음과 행복을 안고…가슴에 사과 하나 둘…그래서 너와 만나는 시간은 모두 포도송이처럼 달고 둥글고 치렁거리고 출렁거린다.
'먼 구름에서 알밤이 빠지듯
너는 그렇게 내 품에 떨어진다
너의 얼굴을 보면 보석을 머금고 있는 것이
석류만이 아닌 것을 안다
너의 가슴을 보면
사과나무 가지가 휘어진다
서류뭉치들이 연이 되어 날으고
시계추 끝에선 포도송이가 열린다
시월은 하늘과
하늘의 친척들이 몰려오는 달
꿈과 기다림이 현금으로 거래되고
온 도시가 잠깐
하늘의 식민지가 되는'
나의 시는 사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서글프다. 스페인에서 스페인 시인으로 오랫 동안 살아온 세월이 어쩌면 우리 시인 민용태에게 그늘이 된 것일까.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도 시월은 시의 달, 참으로 시와 시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달이다.
모든 종이와 '서류뭉치들이 연이 되어 날으고' '꿈과 가다림이 현금으로 거래되니까'. 도시의 삶이라는 것이 일년내내 일과 시간표와 일상 속에 파묻혀 쩔쩔 매는 지상의 나날들 아닌가. 그래서 무감각해진 우리 도시인들의 눈에 더욱 높아진 하늘이 그 무섭게 세찬 푸르름을 한꺼번에 퍼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추위를 달고 오지 않는 가을은 없다. 벌써 알밤들도 다 떨어지고 도토리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이 왜 도토리까지 깡그리 다 주워가는지 모르겠다. 산자락에는 '도토리나 밤을 주워가지 마세요. 다람쥐들 먹을 게 없어요'라고 애교 있는 그림까지 붙여 달아놓았다. 그러나 사람들 참 지독하다. 밤도 도토리도 작대기로 뒤져서 있는대로 모두 자루에 넣는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인사하지 않는다. 산길을 갈 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미덕(?)의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사람 같지 않아 싫다. 자기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사람인가. 자기만 먹고 사는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사는가.
그보다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 그립다. 그때는 다람쥐도 우리처럼 가랑잎 속에서 도토리를 구워 먹는 줄 알았으니까. 이런 노래를 아는가? '옛날에 간날에 어느 산에서/실오리 연기가 자꾸 나기에/십리길 천리길 찾아가보니/가랑잎 속에서 다람쥐들이/도토리 구워서 먹는 바람에/그렇게 연기가 나더라더라'. 그런데 이 좋은 노래도 사라지고 잊혀지고 이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시월은 쓸쓸함도 한 몫 한다.
엊그제 미국 친구 필립 실버에게서 이메일이 날아들었다. 협심증인가 뭔가로 의사가 당분간 여행을 삼가라고 했다고, 한국 가는 건 다음 가을에나 생각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