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자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나는 한때 24시간 3교대를 하는 직장을 다닌 적이 있다. 공공기관인 그 곳은 물론 노동법이 정한 시간만큼 근무를 하게 하고 법정 공휴일은 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법정 공휴일이라고 당일 쉴 수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해당 기관의 업무가 유지될 정도의 최소 인원은 근무를 해야 하고 대신 다른 날 쉴 수 있는 구조였다. 1987년 대선 당시 직장은 서울, 집은 수원이었던 나는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근무가 끝나자마자 버스, 기차, 택시를 타고 투표장에 왔지만 이미 투표는 종료된 상태였다.

아주 소중한 나의 투표권은 많은 노력을 들이고 돈을 투자했지만 시간에 막혀 전혀 행사되지 못했다. 이것이 성의 문제일까? 당시에도 왜 투표시간은 6시까지인지 너무 속상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투표참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적지 않게 종료시간에 막혀 포기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일이 내게만 있는 일일까?

투표 못해 속상했던 기억
왜 6시까지만 해야만하나
이런 일은 내게만 있는걸까
밤을 낮처럼 사는 시대
권리 행사 제약해선 안돼
현실에 맞게 시간 늘려야

농경사회의 하루는 해가 뜨면 시작되고 해가 지면 끝나게 된다. 투표시간도 마찬가지로 일상 시간을 투표시간으로 정해 별 의심없이 지금까지 고수해 왔다. 물론 여기에는 투표용지를 한장한장 헤아려 가며 대부분 새벽까지 혹은 다음날 정오까지 개표를 했으니 당연히 투표시간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자연의 이치로 살아가던 농경사회가 아니라 밤을 낮 삼아 살아가는 서비스업이 주를 이루는 정보통신사회이다. 또 투표 종료 후 4~5시간이면 대부분 개표가 종료되는 시대이다. 밤새워 개표를 진행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생활 방식 변화와 투표율 하락을 들어 이미 오래 전부터 시민단체는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해 왔다.

여기에 90%에 이르던 투표율이 최근 50% 안팎으로 떨어지면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 참여를 못하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 즉 출근 등이 선거 참여를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정치 세력이 주장하듯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도 국민의사의 한 표현'이거나 '정치혐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3교대, 혹은 2교대를 해야 하는 순환 근무 직장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공휴일이라 해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생계형 자영업 종사자 수가 약 663만명 시대이다. 대형마트 직원처럼 휴일이면 더 바쁜 직종 종사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 과거에는 대부분 직장과 집이 인근에 위치해 설령 선거일 당일 조금 늦게 일을 마쳤다고 해도 서두르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기본 출근 시간이 1시간 이상이고 서울을 중심으로 볼 때 위성도시 거주자는 2시간이 기본이다. 이들이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도 6시 이전에 투표장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거는 국민이 주권자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제도이다. 주권자가 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데 법률적으로 기회만을 제공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투표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편안하고 즐겁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정부는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국민이 가진 중요한 권리에 대한 국가의 책무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투표 참여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가장 적합한 방안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공직선거법이 제한하는 투표시간을 오후 6시에서 9시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 모든 장애 요인이 투표권이라는 중요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낮은 투표율은 단순히 투표율 문제가 아니라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책적 결정이 이루어질 때 정치 불신, 정책 무관심을 넘어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따라서 투표행위를 통한 국민의 의중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향후 정국 안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또 유력 세 후보가 주장하는 국민 통합의 일차적 방식이다.

국민의 기본권인 투표참여조차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소외된 계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투표참여의 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제 60일이 채 남지않은 18대 대선에 투표시간 제한으로 투표장에 못 가는 국민이 한 명도 없도록 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을 양당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