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민선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장
최근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을 만난 적이 있었다. 소위 학력 및 스펙 좋은 사람들을 뽑았더니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없어서 놀랐다 한다.

그는 아마 학원에서 모든 것을 해주고, 그것대로 받아서 암기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그리고 좋은 일자리까지 승승장구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는 평가를 조심스럽게 했다. 이들 학력과 스펙좋은 신입사원 중 다수가 주어진 일은 하나 창의적 일은 기대할 수 없어서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력을 모두 가린 채 신입사원을 채용했단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뽑은 그 신입사원 기수를 '야생'이라고 명명했다는데, 회사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생산력이 높은, 자부심도 대단한 기수라고 했다.

또 누구나 다 아는 유수의 IT기업은 해당분야 전문인력을 학력과 상관없이 모집, 스스로 가르치기로 했다고 했다. 대졸자들을 채용해 본 결과, 이들 대학을 나온 재원들은 스펙은 좋으나, 그 기업이 원하는 직업능력을 가진 사람은 구하기가 어려웠단다.

그래서 이럴바에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원하는 인력을 양성하자고 결심했단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무능력에 맞게 교과과정을 편성하고, 교원을 모집하고 그리고 그렇게 키우자고. 그래서 학위도 수여하지 않는 2년짜리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 학력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승부를 해보고 싶은 젊은 피들이 지원하였다.

기업이 바뀌고 있다. 학교도 학부모도 학생들도 모두 학력만이 최선이다, 좋은 대학을 가야 인생의 성공길이 열린다고 외치고 있는데, 노동시장의 최전선에 서있는 기업이 바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학력만을 보면서 사원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한테 와서 인생을 걸고 승부할 수 있다고. 그리고 정해진 안정적 교육과정이 아니라 산업현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교육과정을 스스로 설계해서 원하는 인재를 육성해 사용하겠다고.

그러나 기업이 바뀌는 것에 비해서 아직 학부모의 인식, 학교 교과과정, 사회적 성공의 학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인식하는 학력주의의 사회분위기는 바뀌지 않고 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는 꿈을 꾸기도 전에 높은 수준의 학력과 스펙만을 쌓기 위해 그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열린고용사회'에 주목하는 것도 그 변화의 하나이다. '열린고용사회'란 학력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고 능력·실적에 따라 대우받는 사회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정부의 관심에 맞추어 최근 일부 금융권 및 대기업에서 고졸자 채용확대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확산은 더 이상 학력이 아니라 능력으로 채용하겠다는 신호탄이며 우리 사회의 학력 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시발탄이다.

성남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견기업과 특성화고가 함께 채용 전부터 맞춤훈련을 실시하고, 고졸출신자가 회사에 입사해서도 지속적으로 학습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후진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중견기업에는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확보할 수 있고, 특성화고생 등 고졸자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원하는 기업에서 마음껏 발휘하고, 지속적으로 능력을 개발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학력만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 그 흐름은 기업에서, 노동시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제 학교도 학부모도 바뀌어야 할 때다. 일자리 창출과 그로 인한 복지의 실현은 누구나 능력에 맞추어 균등하게 노동기회를 보장받는 열린고용사회의 실현으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