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여당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아버지가 싫어서 '60세 이상은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대들었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호되게 뺨을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서슬퍼런 그 시절, 친구 중 몇 명은 데모를 하다 감옥에 갔고 그 친구들처럼 적극적으로 데모에 참가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스스로 자책하던 그 아들은 어렵게 구한 금서들을 탐독하며 '민주화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는 늘 걱정스러웠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재벌' 등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로 열을 올리는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는 혹시 '저놈이 데모하다 감옥에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논쟁에서 아들의 논리정연한 말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의 말이 때로는 옳기도 했지만 6·25때 공산당이 싫어서 북한 고향을 등지고 내려 온 아버지는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모른다"며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 안보가 제일이다"라고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럴수록 아들은 "미국보다는 북한이 편하다"라며 대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해방부터 6·25가 일어났던 5년간 고향에서 일어났던 그 끔찍한 일들을 주마등같이 떠올리며 치를 떨었습니다. 가끔 38선을 넘던 이야기를 하면 아들은 오히려 화를 벌컥 냈습니다. 아버지는 속이 상합니다.
고향에 두고온 부모 생각에 눈물을 훔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늘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영원히 대통령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전두환의 7년은 지나갔고 6·10항쟁으로 이땅에 민주화가 찾아왔습니다.
전두환은 백담사로 쫓겨 났고, 그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아들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단 한번의 의심도 없이 여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아버지를 아들은 가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4명의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2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아들은 이제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장성했습니다.
30년전 아들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제 아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대선은 50일 남았고 두 사람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를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 안철수의 '모호함'과 문재인의 '친노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아버지와 박근혜의 '역사의식'과 '불통'이 싫다는 아들이 또 대립합니다.
기가 막히게 30년전 그의 아버지와 자신이 벌였던 논쟁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민주화'라는 말이 '새로운 변화'와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바꿔보자'는 아들과 '안정이 제일이다'라고 말하는 아버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는 30년전 자신의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심하게 몰아붙였는지 그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신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진저리를 쳤던 아들은 어느새 자신이 보수가 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독재정권 타도'를 부르짖던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옛날 자신이 아버지에게 쏟아냈던 말들을 이제 아들에게 고스란히 듣고 있습니다.
논리를 내세운 아들의 주장에 '안정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자신을 보면서 서글펐고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세대간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무섭고 두렵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세월은 또 흘러갈 것입니다. 또다른 변화가 올 것이고 아들이 장년이 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을 이해할지 모른다고 아버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