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장이 무너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덟 살 첫째 딸아이에게 갑작스러운 병마가 찾아왔다. 그저 감기겠거니 했다. "엄마, 나 주사 한 대만 맞으면 낫는 거지?"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신장 기능 이상으로 매일같이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신증후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1999년 어느 날, 딸은 그렇게 기나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딸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엄마는 기꺼이 자신의 신장을 딸에게 떼어줬다. 2002년 첫 신장이식 수술이었다. 하지만 딸의 몸에서 심각한 거부증상이 나타났다. 결국 이식한 신장을 다시 들어내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가뜩이나 넉넉지 않던 집안 살림은 더욱 쪼들렸다.
치료비를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는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화물차를 내다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빚까지 져야만 했다. 엄마와 아빠는 결국 노점상을 시작했다.
市, 전체 아동 중 2.8%
수도권 최다비율 불구
도움은 10%도 못받아
경인일보, 후원 동참
절망 속에 있던 이 가족에게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하 재단)의 도움으로 딸의 사연이 2003년 'KBS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에 소개될 수 있었다. 후원금이 모였고 치료비를 지원받게 됐다. 그리고 2009년 신장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게 됐다.
하지만 노점상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식 수술을 또 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마침 한 후원자가 나타났다. 신장이식 수술에 이어 두 달치 병원비까지 후원자의 도움을 받게 됐다.
건강을 되찾은 딸은 이제 스물한살 어엿한 숙녀로 자랐다. 인천의 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딸은 "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어린이재단을 비롯한 많은 후원자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병을 이겨내고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됐다"면서 "제가 받은 만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베풀며 살겠다"고 했다.
이 가족과 같이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웃들이 많다. 특히 인천은 수도권 중에서도 빈곤아동 비율이 가장 높다. ┃표 참조
하지만 올 들어 어린이재단의 후원금을 받고 있는 아동은 채 10%에도 못 미치는 1천553명에 불과하다. 또 후원금 신청은 했지만 아직까지 지원을 못 받고 대기 중인 아동도 567명이 있다.
재단은 30일 인천시와 함께 '희망날개 프로젝트 캠페인' 선포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후원자 모집에 나섰다. 이 캠페인에 경인일보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경인일보는 소년·소녀가장, 조손·한부모가정 등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정을 매주 한 차례씩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임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