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국 전통 여성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오던 터에 이번 대선에 3명의 여성후보가 나온 것을 보니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바야흐로 한국여성사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대선 후보 논란 많지만
신라엔 3명의 여왕이 있어…
앞으로는 문화의 시대
여성이 중심이 되어
부드럽고 정직한 방법으로
미래를 이끌어야
신라시대에 선덕, 진덕, 진성 여왕 등 3명의 여왕이 존재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여성이 국가신으로 숭배되고 제사장으로 군림하던 전통이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있던 사회가 여왕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무엇에 대해서든 한쪽으로 치우친 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부정적인 요소에 긍정적 요소가 묻히도록 버려두는 우를 범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상 여성들의 삶에는 부정적으로 인식될 만한 것들이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가치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이 가부장제도와 남성에 의해 억압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개인의 양보를 기본으로 하는 가족의 화합,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내는 공동체적 질서는 존중받을 만했다. 부모에게 절대 복종하기를 요구했던 점은 안타까우나 부모를 공경하던 정신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결혼이후 사랑보다 가계계승의 의무를 우선시했던 점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부부 사이에 신의를 중시하며 남편에게 조언했던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열녀가 되기를 원했던 점은 잘못이나 윤리의식만큼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여성의 개가를 금지하거나 억제하려던 것은 한계로 지적되지만 자녀에 대한 책임에 따라 이혼을 경계했던 점은 의미있게 여겨진다. 지금도 부부의 이혼과 재혼에서 중요한 부분은 자녀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녀교육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던 점 또한 매우 소중하다.
아이를 목욕시킨 물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을 정도로 자녀에 대해 조심하는 태도를 지녔던 전통 여성들의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계승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가족, 친척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점은 벅찬 일이었으나 동서(同壻)간의 화목 등 집안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던 점은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많은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등 여성들이 겪었던 고달픔은 안타깝지만 웃어른을 섬긴다거나 남을 배려하는 정신만큼은 귀하다.
과도한 노동은 문제이나 무엇보다 가정경영의 책무를 다한 점은 긍정적이라 하겠다. 근면한 살림꾼으로서 소임을 다하려 했던 진지한 모습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가 따라야 할 것이다. 여성의 지적능력을 경시했고 여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나 정성과 책임으로 가정을 이끌고 검소와 청렴으로 살았던 점은 인정받아야 한다.
과거를 힘으로 상징되는 무력과 남성의 시대라고 한다면 앞으로는 여성과 문화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미래시대는 여성이 중심이 되어 부드럽고 정직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본다. 이럴 때 여성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특히 20세기의 세계화는 서구화였다면 21세기의 세계화는 '탈서구화'이자 '아시아화'라고 한다. 서양은 힘을 통한 선택을 중요시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동양은 자연의 순리를 통한 중용을 중시한다. 즉 한국문화는 조화와 배려를 존중하는 여성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나혜석이 '여자도 인간'이라고 외치면서 조선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 사회에 온몸으로 맞섰던 것이 1920~30년대였다. 이제 10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여성 대통령후보가 나와 여성이 맘껏 뜻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니 처음에 내린 눈이 녹아 땅을 차게 한 후에야 눈이 쌓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앞으로 여성문화는 과거에서 배울 것은 기꺼이 찾아 배우고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을 배우는 지혜로운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전통시대에 보여준 화합과 배려, 신뢰와 원칙, 경영과 청렴 등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인간해방의 평안한 삶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