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한글날 제정의 기준이 되고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현재 민간(간송미술관) 관리에서 국가 관리 체제로 돌리고 학술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이다.
훈민정음 문자해설서 해례본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유권
국보로서 보존은 잘됐지만
폐쇄적으로 접근 막아
제대로된 연구조차 못해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야
세종은 1443년 음력 12월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신하들과 함께 연구 보완 끝에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훈민정음 문자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을 출판했다. 간행 날짜인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바꾼 날이 10월 9일 한글날이다.
이 책 이름과 문자 이름이 '훈민정음'으로 같다 보니 책은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른다. 더욱이 이 책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인류의 유산이 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었고 그 책을 간송 전형필 님이 사들여 현재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2008년에 상주에서 공개되었다고 하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재판에 휘말려 현 소장자가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어 아직은 원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간송본도 전문가에게조차 실체가 공개되지 않은 채 반세기가 넘게 흘러오고 있다. 원 책의 영인 과정조차 불투명한 채 이에 대한 무수한 논문과 논의가 '카더라' 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그 책이 정말 세종이 1446년에 펴낸 최초 원본인지 후대에 다시 펴낸 것인지 의심스러운 상황까지 왔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은 간송미술관이 보존과 관리를 이유로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보존은 잘 되었지만 우리는 반세기 넘게 국보를 국보답게 연구조차 못하고 소모적 학술 담론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간송미술관은 한두 해에 한 번 유리창 전시를 통해 모두 66쪽 가운데 두 쪽만을 드러내 보이는 공개를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제는 전문가에게 공개해 검증과 연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일제 강점기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사들여 보존해온 간송 전형필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것이다. 세계 문화유산인 국보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간송의 정신이 아니다.
우리 후손들이 간송의 정신을 더욱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관리 체제로 돌려야 한다. 당연히 소유권은 간송미술관으로 하되 관리체제를 국가 체제로 돌린다면 오히려 간송미술관을 더욱 살리는 일이다. 물론 국가는 간송미술관의 숭고한 정신을 존중하고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이 1940년에 안동에서 발견되어 간송이 보존하게 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일본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 침입하여 수많은 사람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비참하게 죽게 만든 범죄 못지않게 우리의 역사를 담은 수많은 역사 자료를 불태웠으며, 조작 폐기하고 약탈해 갔다.
1940년은 이러한 일제의 잔혹한 침략 행위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이다. 만일 간송이 이 책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고 일제 손에 넘어갔다면 우리는 우리 겨레의 위대한 정신 유산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는 일은 간송의 후손과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한글날이 국경일로서 더욱 빛나게 하고 그 가치를 빛내기 위해 문화재 보호법을 개정해서라도 훈민정음 해례본의 실체를 다시 밝혀야 한다. 지금 드러난 훈민정음 해례본의 여러 내용은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에 간송의 배려로 몇몇 학자들이 밝혀낸,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내용들이다.
원본 확인에 가장 중요한 판심이나 글자체, 종이 지질조차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물론 그 몇몇 학자들의 학문적 경륜과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나마 그런 학문적 업적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훈민정음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해 올 수 있었다. 그 분들의 업적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의 진정한 가치를 위해 더욱 발달된 과학 기술과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그 실체를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