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엊그제 끝났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입시전쟁은 시작됐다. 언론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학교폭력과의 전쟁, 쓰레기와의 전쟁 등 수많은 것들을 전쟁에 비유한다. 

그래서 '~와의 전쟁'이라는 끔찍한 표현을 자제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수험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총칼만 안 들었지 그야말로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한국인은 본능적으로 대학입시일의 의미를 알고 있다. 이 날은 12년 공부의 결실을 보는 날이며, 한 인간의 평생 운명과 신분이 결정되는 무시무시한 '계급전쟁의 날'이다. 때문에 온 나라가 초긴장 살얼음판이다. 

전국의 출근 시간이 늦어지고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고 내리지 못하며 버스와 전철, 택시 등이 총동원되고 경찰과 구급차가 출동한다." 

강준만 교수의 저서 '입시전쟁 잔혹사'라는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다. 

어떤 이는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2년 동안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사다리를 오르던 아이들을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날이라고 잔인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생존경쟁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에게는 30~40년 동안 지속돼온 당연한 현실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큰 뉴스거리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별을 보고 등교해 별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운 눈초리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너무 고달프다. 성적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자주 일어난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마도 수험생보다 더 초조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경험자라면 모두가 느낄 정도다. 입시위주의 교육과 출세지향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이 안타깝지만 12년 공부를 단 한번으로 결정짓는 수능시험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쩔 수 없이 경쟁 사회에서 1위가 있으면 꼴등도 있는 법이다. 인생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달콤한 표현도 지금은 귀에 들리지 않을 때다.

오로지 다른 학생과 비교 대상이 되는 것과 공부하는 능력에도 한계는 있는 법인데 성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비교하는 것이 두렵다. 이러한 현실을 알지만 대선 후보들은 입시제도 개선에 관해서는 구체안이 없다. 설건드려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고교시절 일류 대학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수험생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수험생의 필수(?)라던 재수의 방황 속에서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철없는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신나고 재미있었는지, 어떤 공부를 하면 나의 미래가 행복해질까만을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고유의 개성과 특성을 갖는다.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달으면 된다. 

공자는 논어의 옹야편에서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했다. 인생에 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이 곧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느라 정신없을 때다. 부모님의 희망사항도 들어야 하고, 또 주변의 권고도 귀담아야 한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항로가 험난해진 경우가 많다. 점수에만 맞춘다거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대학과 학과를 결정한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의 개성을 잃고 의미없는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다.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의 시대에 무조건 일류 대학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트렌드를 읽어내야 한다. 10~20년 후에는 어떤 분야가 세상을 주도할지 모를 일이기에 그렇다. 행복은 분명 성적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성적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세우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을 때 얻는 만족의 성적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