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날씨 속에서도 중학교 1학년인 유진(13·가명)·유미(가명) 쌍둥이 자매는 얇은 교복만 입고 등굣길에 나선다. 얹혀살고 있는 개척교회의 좁은 화장실에서 세수만 겨우 하고 학교로 향하는 두 딸아이를 지켜보는 엄마 김선자(33·가명)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거센 불길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두 딸이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안쓰럽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원인모를 화재로 집 잿더미
10개월째 예배당 안방삼아
두딸, 칼바람에 얇은 교복만
두툼한 외투 꼭 사주고 싶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비좁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선자씨와 남편 이재광(29·가명)씨, 그리고 쌍둥이 자매와 어린 두 자녀 등 여섯 식구의 단 하나뿐인 보금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원인 모를 화재는 그 작은 행복마저도 앗아갔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며 주변 지인들이 어렵게 마련해 준 세간은 모두 집과 함께 잿더미로 변했다. 자식이 둘이나 딸린 여자와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시댁과는 인연이 끊긴 지 오래됐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자 자란 선자씨는 친척도 없었다. 결국 기댈 곳은 교회 목사님밖에 없었다.
사택도 없는 교회 예배당을 여섯 식구의 안방처럼 사용한 지 벌써 10개월이 넘어간다. 예배가 있을 때마다 자리를 치웠다 깔기를 반복해야 한다. 짐을 치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을 빼고는 모두 컨테이너 창고에 넣어 뒀다.
성진이(3·가명)와 성연이(2·여·가명)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딱 1개씩만 꺼내 놓았다. 예배가 시작되면 어린 두 아이는 엄마가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예배당 뒤편으로 조용히 가 있는다.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교회에 살고 있다 보니 면역력이 약한 두 아이는 감기를 달고 산다.
사춘기 두 딸의 씻는 일이 가장 곤혹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교회 집사님의 아파트를 찾아가 목욕을 한다. 요즘 두 딸의 말수는 더욱 줄었다. 한동안 아빠 없이 어렵게 자라온 탓에 또래보다 조숙한 쌍둥이 자매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엄마는 누구보다 잘 안다.
갖고 싶은 물건이 많을 텐데도 한 번도 사달라고 조르거나 사소한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 두 딸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김씨는 고개를 떨궜다.
남편 재광씨는 공항신도시 공사장에서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일하며 매달 품삯으로 60만원을 받는다. 가족들의 기본적인 생활비를 대기도 버거운 돈이다. 그나마 이달부터 공항의 한 물류업체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 가정에 한 줄기 작은 희망이 생겼다.
김씨는 "아이들이 부족한 부모를 만나 마음껏 꿈을 키워가지 못하는 것을 애들 아버지가 무엇보다 미안해한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김씨는 "하루빨리 아이들에게 공부방과 책상을 마련해 주는 것이 소원이다"고 했다. 그리고 쌍둥이 자매에게 두툼한 외투 한 벌씩 선물해 주고 싶다고 했다.
후원 문의: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천본부(032-875-7010), 홈페이지(www.childfund-incheon.or.kr)
/김성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