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민선 단체장이 나온 지 17년이 지났다. 지방자치가 성숙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악화되고 있다.

정부 운영에 필요한 요체는 재정 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방자치 이후 자치단체의 재정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자수입 날린 재정 조기집행도 상황 부추겨
관련 심의위원회 조직 '장관급 격상' 한목청


일상적으로 들어가는 일반회계 총액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을 합친 자체 재원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방재정자립도가 지방자치 도입 이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방선거가 다시 시작된 1995년에 63.5%였던 지방재정자립도가 불과 5년 뒤인 2000년에는 60% 이하(59.4%)로 추락한 뒤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 재정자립도가 올해는 52.3%에 불과하다. 써야 할 예산 총액의 절반밖에 스스로 마련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필요한 나머지 금액은 중앙정부의 보조와 빚을 내서 충당하는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뒤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내 244개 지방자치단체 중 지방세를 걷어 공무원 인건비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방재정·세정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유태현 남서울대학교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방세로 인건비를 해결할 수 없는 지자체가 123곳에 달한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50.4%다. 17년이나 된 지방자치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데이터다.

이런 문제가 빚어지는 것은 국가 정책이 지방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실현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에서 경기불황의 타개책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한다고 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곳은 지자체다.

국가는 법인세와 소득세 등 내국세의 일부를 떼어 각 지방에 나눠준다. 부족한 재정을 메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금을 인하

하면 이 내국세가 줄고, 덩달아 지방교부세도 줄어들기 때문에 법인세 인하는 곧바로 지방재정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유태현 교수는 또 최근 몇 년 사이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국가에서 각 지방정부를 상대로 독려한 '예산 조기집행 사업'이 결국 지방의 재정난을 부추기는 '독'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반기까지 은행에 맡겼을 경우 생길 막대한 이자수입을 날려버렸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의 현실과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국가정책 시행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지난해 정부가 취득세를 전격 인하했을 때 전국 지자체가 일제히 반발하자, 정부는 결국 세금 인하분을 보전해주면서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뒤틀린 지방재정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행안부 제2차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켜 중량감을 높여야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태현 교수는 "정부가 내세우는 여러 가지 경기불황 타개책이 외형적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지자체를 옥죄는 정책인 경우가 많다"면서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주 재원을 마련할 길부터 터야 한다"고 했다.

/정진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