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팽창에 길들여진 사회
더 많아지고 빨라지지 않으면
불안에 빠져 증오만 키워
이러한 '성장기 갈등' 해결
너그러운 사회분위기 조성할
진심·역량있는 지도자 그리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자의 가슴에 아리게 그러나 훈훈하게 남아있는 그 마을은 일본식 이름이 말해주듯이 생겨난 유래부터 아픈 기억을 가진 '붉은 땅(赤琦)' 위에 지어진 일제치하 부두공사장 노동자들의 창고형 집단 합숙소였다.
해방 후 낡은 건물의 내부를 합판으로 얼기설기 칸을 치고 천장을 대어서 허리를 펴고는 들어갈 수 없는 2층짜리 쪽방을 만들어 갈 곳 없는 이들이 들어와 살았다. 아침이면 공동변소 앞에 줄을 서야 했다.
1989년 12월 말 동구청장으로 임명 받은 필자가 취임식에 가기 전 맨 먼저 방문한 곳이 거기였다. 초겨울 한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코끝이 매워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그러면서 내가 설 곳이 여기로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이 여기 있구나 하며 의지를 다잡았었다.
그러나 정말로 나를 울렸던 것은 그 이듬해 봄이었다. 늘 순찰코스에 넣어 들르던 중에 쇠약한 노인네 두 분이 사는 칸에 갔을 때 집 앞에 나란히 열 지어 선 허름한 화분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직업 없는 남편과 초등생 아이들을 힘겹게 키우던 억척 아주머니네도, 막일 가서 아무도 없는 위칸 집에도, 집집마다에 옹기종기 투박한 화분들이 보였고 꽃들은 건강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화장실만 공동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물도 멀리 공동수도에서 길어다 써야 했었다. 이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작으나마 행복을 키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로 고마워서 눈시울이 적셔 왔다.
그 당시 그 희망의 싹은 온 국민의 것이었고 우리의 하나로 된 힘과 면면히 이어져 온 지혜의 각성을 바탕으로 아낌없이 쏟아 낸 땀방울은 기적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나라는 발전의 터전을 굳게 했으며 국민은 가진 것이 있게 되었다.
IT와 자동차를 넘어서 '강남스타일'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어느 나라도 쉽사리 해내지 못했던, 국제사회에서 마음을 얻는 문화적 단계까지 지평을 넓혀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팽창에 길들여져 온 50년, 마치 마약의 금단현상처럼 더 많아지지 않으면, 더 빨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불안하다. 못견뎌한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 증오를 싹틔운다. 그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하면 넘쳐나는 물질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우리 것이 아니다.
왜?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 왔던 것일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인이 부러워할 만큼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는데 불만은 더 커져가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자문하고 있다.
이 성장통은 성숙기에 접어들면 멈춰질 수 있을까? 성장기를 지나면 성숙기. 성숙기의 특징은 슬로 템포(slow tempo)이고 그것은 거스르기 어려운 과정의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로인해 금단현상을 겪는다. 그 금단현상의 기간을 줄이고 성장통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넘쳐나는 싸구려보다는 작고 적지만 제대로 된 것을 추구하는 단계가 되었음을, 헤픈 씀씀이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소비를 체득해 가는 튼실한 가계의 보람을, 그리고 행복도 물량으로서가 아니라 내실의 진한 향기를 만끽하는 진정한 자아를 일깨우면서 나눔으로써 넉넉한 그리하여 너그러움이 각박함을 밀어내는 존귀한 사회분위기를 애써 설득하고 제도적으로도 만들어 가는 진심과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그립다.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성장기의 갈등에서 벗어나야 할 때 그 때가 된 것이다. 언제까지 불만 속에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 것인가.
행복과 풍요는 가진 것에만 비례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큰 평등이요 은총임을 깨달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