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림아뜨렛길 '동이네 다랑채'(사진 맨 위), 금창동 배다리의 오래된 주택(사진 가운데 왼쪽), 수도국산 일대 골목길(사진 가운데 오른쪽, 사진 아래 왼쪽),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사진 아래 오른쪽)

인천시 동구 송현동과 송림동 일대에 걸쳐 있는 높이 56m 작은 산인 수도국산(水道局山). 과거 수도국산 주변은 인천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낮았던 대표적인 빈민가였다.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 비좁은 골목길 사이로 들어선 오래된 집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이들이 모여든 곳이 이곳이다. 이어진 6·25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란민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송림아뜨렛길
흉물로 방치된 지하보도
주민쉼터로 거듭나 인기
채소재배 동이네 다랑채와
길게 이어진 벽면 갤러리
사랑방 역할 북카페 큰 호응


배다리 골목길
박경리 작가 결혼초 살던 곳
거주하던 집과 비슷한 한옥
'박경리 북카페' 차리기로
헌책방거리 등과 연계
'골목길 투어'도 운영 계획


▲ 송림아뜨렛길 '북카페'

수도국산 비탈에는 이렇게 모인 3천여 가구가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살았다. 현재 달동네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일부 주택가와 골목길이 아직까지 옛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이렇듯 동구에는 시대상을 품은 오래된 주택가들이 송림동과 금창동 일대에 있다.

그동안 '못사는 동네'로만 인식되던 이 지역들이 최근 추억의 공간으로 바뀌며 방문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어릴적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진 골목길에서 뛰놀며 '골목대장' 놀이를 하던 그시절의 향수. 최근 이 지역에 문화공간들이 새로 생기면서 추억과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어릴적 추억 속의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문화의 향기를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 달동네 속 문화 오아시스, 송림아뜨렛길

수도국산에서 내려와 현대시장 입구로 향하면 송림아뜨렛길(구 송림지하보도)을 만날 수 있다. 아뜨렛길은 식물재배 전시관 '동이네 다랑채', 북카페, 갤러리, 문화센터 등을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다.

▲ '박경리 북카페'로 활용할 한옥

동구는 원래 지난 1987년부터 상가 조성을 목적으로 송림지하보도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여건변화로 지난 2006년 상가가 아닌 지하보도로 완공됐고, 완공 후에도 잦은 결로현상과 적은 통행인구 등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흉물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이에 동구는 휴식 공간이 부족한 수도국산 일대의 지역여건을 감안, 인근 시장과 학교, 복지시설 방문객들과 주민들이 지하보도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지난 5월 송림아뜨렛길을 만들었다. 이 곳은 6개월여만에 지역의 명소로 거듭났다. 특히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무더웠던 올 여름 노인들의 무더위 쉼터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아뜨렛길의 여러 공간 중 연보랏빛 LED조명을 이용해 여러가지 채소를 친환경 수경재배하는 '동이네 다랑채'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겁다. 형형색색의 LED 조명과 함께 무균 환경에서 빛과 공기, 온도, 영양 등을 인공제어해 상추, 파슬리, 청경채 등 채소를 기르는 시스템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총 8개의 식물재배기로 월 2천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동이네 다랑채에 필요한 인력을 노인복지관과 연계해 확보하는 만큼, 노인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전담 해설사를 둬 아이들에게 도시농업, 친환경 수경재배 등 교육도 가능하다. 또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기른 채소들은 학교 급식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 송림아뜨렛길 '갤러리'

다랑채를 따라 죽 이동하면 벽면을 이용한 갤러리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꾸준히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1천200여권의 도서를 구비하고 있는 북카페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며 독서공간이자 휴식공간으로 애용되고 있다. 북카페의 모든 도서는 주민들과 구청 직원들이 1인 1도서 나눔운동을 통해 마련한 것이다.

풍물놀이 등을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도 자랑거리다.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악기를 배운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아뜨렛길에 대한 입소문은 바다 건너 일본까지 퍼졌다. 지난 6월 일본 국영방송인 NHK에서 생방송으로 동이네 다랑채를 소개했고, 서울시 도봉구와 오산시가 벤치마킹을 하기위해 방문하는 등 지금까지 500여명의 외부 방문객이 이곳을 견학했다.

서울 도봉구의회 이경숙 부의장은 "마땅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골칫거리로 남아 있는 창동역 지하공간에 대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관계 공무원과 함께 송림아뜨렛길을 방문했다"며 "송림아뜨렛길은 누구나 부담 없이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문화·휴식공간으로 잘 꾸며졌고, 지하공간에 대한 활용방안을 찾으려는 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좋은 선례다"고 말했다.

# 박경리 문학향기가 흐르는 주택가 골목길

금창동 배다리 지역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도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본래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이곳에 소설 '토지'의 고 박경리(1926~2008) 작가가 1948년부터 2년간 살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 금창동 배다리 오래된 주택들 전경

당시 22살 젊은 새댁이던 박 작가는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며 많은 책을 접했고, 작가로서 탄탄한 실력을 키우는 발판을 마련했다.

박 작가는 1946년 결혼한 후 전매청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배다리에 터전을 마련했다. 책을 너무 좋아해 고물상에서 귀한 책을 보면 몇시간이고 그자리에 서서 읽곤 했었다. 광복 직후, 종이를 만들 나무가 없어 한국어로 된 책이 무척 귀하던 시절에 박 작가는 한권 두권 책을 모아 헌책방을 꾸렸다.

박 작가가 배다리에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남편과 아들, 딸과 함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던 시기였다. 이후 시작된 6·25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는 등 박 작가 생애에 고난이 시작된 바로 직전이었다.

박 작가는 금곡동 59(현재 금창동 61 일대로 추정)에 있는 'ㅁ'자 한옥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건물들을 'ㅁ'자로 둘러싼 형태다. 주로 추운 북부지방에서 바람을 막기 위해 지은 주거 형태다.

배다리 일대에서 박 작가의 흔적을 찾아낸 헌책방 아벨 곽현숙 대표는 "배다리 일대에 단단하게 짜여진 'ㅁ'자 한옥이 많은 이유는 당시 이 지역의 시대상과 연관이 있다"며 "해방 직후 못먹고 못살던 시절, 각지에서 배다리로 모여든 사람들이 세간살이 하나 버리지 않고, 단단하게 여미고 살고자 했던 그 시절 사람들의 염원과 의지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동구는 금창동에 박 작가가 살던 'ㅁ'자 한옥 중 보존상태가 좋은 빈집을 골라 내년 3월께 '박경리 북카페'를 차리기로 했다.

박경리 북카페에는 작가연보, 저서 등을 소개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마당 입구에 시비도 설치할 계획이다. 또 배다리 지역의 생활상이 반영된 헌책방거리, 다양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주택가 등과 연계해 '골목길 투어' 프로그램도 만들 예정이다.

지난달 초 이곳을 방문한 소설 토지학교 회원 김명원(50·여)씨는 "어릴 적 친구네 집에 놀러갈 때 두드리던 대문을 수십년만에 이곳에서 보게 됐다"며 "박 작가의 이야기가 서린 배다리에서 박 작가가 살던 시절을 생각하며 걸으니 기분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