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유방의 측근인 번쾌가 비호같이 연회장에 난입해서 항우에게 창끝을 겨누었다. 항장이 유방을 칠 경우 자신은 항우를 요절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의표를 찔린 항우는 번쾌를 '훌륭한 장수'라며 칭찬하면서 유야무야하고 말았다. 충신 번쾌 때문에 한왕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말 업적평가시즌에 즈음한 샐러리맨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일년 내내 불황타령으로 일관한 터에 내년 경기전망마저 신통치 못한 때문이다. 명퇴신청을 받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는 소식에 오금이 저린다. 내년 연봉협상을 앞두고 평가점수를 한 점이라도 더 올리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승진을 앞둔 회사원들의 심정은 더욱 절박하다.
직장 상사가 후배사원들의 공을 가로채는 후안무치는 물론 다면평가를 채택하고 있는 경우 거꾸로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는 진풍경마저 간취된다. 한치 앞이 예단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빚은 해프닝이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이윤에 있다. 민간기업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담보되어야 지속적 투자가 보장되고 임직원들의 먹거리까지 담보되는 탓이다. 매출액 극대화와 비용 최소화야말로 알파요 오메가인 것이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한 요인이다. 국내경제가 산업화단계에서 후기산업사회로 이행한 것은 점입가경이었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대안이었다.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패러다임은 종래 일본식 경영에서 미국식 경영으로 대체되었다. 종신고용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연공서열형 임금은 업적위주의 생산성임금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GM의 잭 웰치 회장은 기업경영의 전범(典範)으로 자리매김했다.
성과는 단기간에 입증되었다. 기업들의 고질적인 부채경영이 완화되었을 뿐 아니라 내부유보금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국내경제규모 또한 확대되었으며 무역 1조 달러클럽에도 가입했다. 그 와중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포스코 등은 글로벌기업으로 급부상했다.
현대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가 격찬할 정도이다. 1세기 동안에 구축된 경영시스템을 불과 10년 만에 완전히 바꾼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자본의 위력이 대단하다 싶다.
반면에 부작용도 컸다. 고용 없는 성장의 가속으로 인해 기술적, 구조적 실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임금근로자들 간의 양극화 심화는 또 다른 주목거리이다. 종업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빠른 속도로 약화되는 것은 설상가상이다.
내부고발 및 산업기술 빼돌리기 건수가 점차 증가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기업 스스로 판옵티콘에 갇힌 죄수신세 격이어서 향후 관리비 앙등은 불문가지이다. 작금의 경제민주화 요구도 범상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추이와도 상관관계가 높다. 근시안적 경영이 빚은 부작용이다.
일전 경인일보와 인천경영포럼이 주최한 조찬회에 초대된 리노공업의 이채윤 대표이사는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것이 돈을 버는 원천기술"이라며 휴머니즘경영을 강조했다. 연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기업들의 지나친 효율추구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와 맥을 같이한다.
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로열티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무형자산이다. 일본이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음에도 '일본식 경영'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산업화기의 '한강의 기적'도 같은 맥락이다.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일본 교세라그룹 이나모리 가쓰오 창업자의 '경영의 진정한 목적은 종업원의 행복'이란 가르침에 귀기울여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