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홍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
협동조합 기본법이 12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협동조합 설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단체들이 장밋빛 청사진을 기대하며 뜨거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향후 5년간 최소 8천개에서 최대 1만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설립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5명만 모여도 설립 가능
향후5년 최대 1만개 생길듯
19개단체 네트워크 연계
원주 모범적 사례 본받아
자조·자립·협동정신 기반
소시민 경쟁력 강화 계기로


협동조합하면 생각나는 것은 기존의 농협이나 신협, 생활협동조합 등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서울우유협동조합, 미국의 썬키스트, FC 바르셀로나와 같은 명문 프로축구 구단 등도 대표적인 협동조합들이다. 이러한 거대 기업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12월1일로 발효된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5명이 모여서 신고만 하면 누구라도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협동조합 기본법에는 일반 협동조합과 더불어 사회적 협동조합도 설립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 마을 공동체, 대형마트에 대한 영세 소상공인들의 경쟁력 강화, 문화·예술의 활성화, 청년·벤처창업 활성화 등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 설립이 활발히 추진된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협동조합들이 지속성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성공하는 협동조합이 갖춰야 될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것이 협동조합의 자조와 자립이다. 이러한 성공사례로 원주 협동조합의 운영 사례를 들 수 있다. 필자는 최근 원주 협동조합을 방문하면서 새삼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 잘 운영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원주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친환경 농산물을 취급하는 원주한살림생협, 원주의료생협, 원주노인생협, 원주밝음신협 등 19개 단체가 네트워크로 연계되어 있다.

원주 협동조합운동은 1972년 고리대금으로부터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특별히 발달한 산업이 없는 인근 작은 탄광도시에서는 글자를 모르더라도 편하게 저금하고 쉽게 대출받을 금융기관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이후 40년 동안, 원주는 한국의 대표적 협동조합 도시가 되었다. 현재 19개 단체 3만5천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이는 중복 조합원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원주시 인구의 약 10%에 해당된다.

특히 원주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만 있는 독특한 조합으로 노숙인들이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갈거리협동조합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갈거리협동조합은 2004년 창립되어 조합원 300여 명에 자산규모가 2억4천만 원에 대출 규모도 4천여만원에 이르고 있으며 대출 회수율도 다른 시중 금융기관보다 훨씬 높아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협동조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절박함'에 있다고 원주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갈거리협동조합 조합원들도 스스로가 절박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절박함 속에서 자조, 자립, 협동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몇몇 사람에 의한 기획자 중심의 협동조합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대리운전기사들이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기로 해 법 시행에 따른 1호 협동조합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리운전협동조합이 잘 운영되기를 바라면서 역시 '절박함'이 협동조합을 창설하게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게 한다. 한국에서의 협동조합은 이제 시작이다.

행여 정부의 조급함과 인위적 개입으로 협동조합이 단시간 내에 성공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십 년간의 간절함과 조합원들의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원주의 사례에서처럼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단체들은 이제부터 절실함과 끈기와 협동으로 각자의 꿈을 위해 차근차근 한발 한발씩 내디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