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
세종은 47살 때인 음력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1~10일)에 '훈민정음'이란 책을 통해 새 문자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창제한 날을 기념하고 남한은 반포한 날을 기념하고 있다.

북한은 창제한 날 기리고
남한은 반포한 날만 기념
창조적 문자 한글 만든 날
국가에서 기념일로 지정해야
언어는 남북 연결할 수 있는 끈
통일 위해 두 날 함께 받들어야


분단의 아이러니이지만 이제는 남북이 연계하여 창제한 날과 반포한 날을 함께 기려야 한다. 필자는 창제한 날은 문자 기념일로, 반포한 날은 한글날로 기리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필자는 또물또세종 한말글연구소에서 지난해 남한 최초로 기념 행사를 한 바 있다. 이제는 민간 단체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한다.

남한 쪽에서는 반포한 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으므로 한글날 자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려야 한다. 1443년 12월에 이미 훈민정음 28자가 완벽하게 창제되었기 때문이다.

하층민을 배려하고 가장 창조적인 문자를 만든 날을 기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인가. 따라서 10월 9일은 한글날로,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은 문자의 날로 기념했으면 한다. 훈민정음은 영국의 존맨이 "모든 알파벳의 꿈"이라고 격찬한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문자에 대한 보편적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포날은 배달겨레 문자로서의 특수성을 살리고 창제날은 인류 문자의 보편성을 기리자는 것이다.

문제는 훈민정음 창제일을 특정 날짜로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최초 기록은 세종실록 12월 30일 달별 기사로 "이 달에 임금이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훈민정음이라 일컫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고 했기 때문이다. 12월 어느 날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당연할 것이다.

세종은 문자 창제를 비밀리에 해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식적으로 새 문자 창제를 알린 것이 아니라 집현전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알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특정한 날에 공식 발표를 하였다면 사관에 의해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었을 것이다. 달별 기사라는 사실은 그런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일정한 기준을 세워 기념일을 세우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먼저 음력 12월의 특정 날을 정해 양력으로 환산하여 기념일을 정하는 방법이 있다. 북한에서는 음력 12월의 중간인 15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월 15일을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로 삼고 있다.

이렇게 양력으로 환산하면 훈민정음 창제 연도가 1444년이 되어 1443년의 상징성이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세종실록 기록일이 음력이라 하여 현대 시각으로 양력으로 연도까지 바꿔 가며 기념일을 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많다.

연도의 상징성과 실체성을 살리기 위해 12월에 한다면 첫째 날인 12월 1일, 실록 기록 날짜인 12월 30일, 아니면 12월 마지막 주 토요일 가운데 하나를 선정할 수 있다. 다만 12월은 연말 분위기 때문에 차분한 기념일로 설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양력으로 환산한다면 북한식의 1월 15일을 따르거나 아니면 1월 30일 또는 공휴일 지정 부담 없이 늘 변함없이 기념할 수 있는 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기념일로 삼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훈민정음 창제날을 한 번도 기념한 적이 없다. 북한도 들리는 말로는 제대로 행사를 치르지 않고 있다. 이제 창제날은 훈민정음의 보편적 가치를 기려 문자의 날로 승화시켜 국제적인 기념일로 삼아야 한다. 남북 이질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을 연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끈이 한글이다.

새로운 기념일 제정은 중론을 모아야 하겠지만, 남북 통일을 전제로라면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은 북한 날짜인 1월 15일을 수용하고 반포 기념일은 남한의 한글날인 10월 9일을 북한이 수용해 남북이 함께 기린다면 통일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기념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