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논설위원
많이 추워졌습니다. 지난 4월 청명 이후 다시 편지를 띄웁니다. 추운 날씨에 지원유세 다니느라 고생이 많겠습니다. 18대 대선 예비후보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유세를 전격적으로 나서면서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하겠지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출마 선언 발표 시기를 늦추는 바람에 지지자들의 애간장을 어지간히 태우셨지요. 지난 9월20일 마침내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대형 현수막 밑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출마를 선언할 때의 모습과 출마 포기선언 때의 떨리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맴돕니다.

출마포기 이후 많은 사람들은 과연 문 후보의 지원압력을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시련'을 극복하지 못할 것을 보았습니다. 안철수진영에 있던 세력들중 일부가 문 후보의 지지를 집요하게 추궁할 것이고 성격상 견뎌낼 수 없다고 본 것이지요. 결국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진영은 와해됐습니다.

지지자들에게 단 한마디 해명없이 지난 6일 '오늘이 대선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라며 문 후보에 대한 무조건지지를 선언하면서 대선은 또다시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문재인'보다 '안철수'를 연호하는 소리를 다시 들으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만약 '새정치'라는 기치를 내걸고 혼자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부풀려진 인기'였건 '새정치의 열망'이었건 정치쇄신을 지독히 염원했던 '국민'들만 보고 "나는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꿋꿋하게 걸어갔다면 어찌됐을까.

아마도 그 정치적 신념에 박수를 보낸 지지자들이 생각보다 많았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도와주겠다면서 민주당에서 넘어온 세력, 이른바 '트로이의 목마'를 거둬들인 것이 첫 번째 실수였습니다. 기존의 정치세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안철수 그 자체'에 열광했던 47%의 지지자들은 주변에 정치인들이 몰려든 것에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두번째 실수는 '단일화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버린 것입니다. 문 후보와의 만남을 받아들이고 단일화를 전제로 13개항에 합의했던 그날 밤 '최고의 악수'를 두었던 것이지요. 문 후보를 만나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캠프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력이 상당했겠지요. 여기에 스스로 후보직을 포기해도 잃을 것이 없다는 '꽃놀이패'라는 자기모순에 빠졌을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장고 끝에 수'를 두었지만 그 결과는 두고보면 알겠지요. 하지만 상대들은 단일화 논의과정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9단'의 고수들이었습니다. 단일화협상 선언이후 지지율이 하락한 것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새정치'에 목말랐던 지지자들이 실망했다는 뜻이지요. 그러다보니 불안했겠지요. 정치쇄신을 갈망하던 지지자들만 쳐다보면 되는 것인데 지나치게 좌고우면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결국 문 후보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것이 5년후 다시 돌이켜볼 때 세 번째 실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지유세를 하면서도 이번 대선 후 전개될 '안철수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겠지요. 그래서 '문재인 후보 지지해 달라'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고 '꼭 투표 합시다'라고 선관위 직원처럼 말하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아직도 출마를 선언하던 날의 지지자들의 함성을 선뜻 지우지 못하고 나름대로 '안철수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그 함성이 5년동안 귓가에 맴돌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한국정치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최단시간에 무려 40%가 넘는 지지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은 지금의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국민이 상당수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릴 것입니다. 정치판은 맹수들로 가득한 아프리카 사바나의 초원보다 훨씬 무서운 곳입니다. 끝없는 도전과 그로인한 시련이 계속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루비콘강은 건넜고 넘은 다리를 태워버렸으니. 앞으로 정치여정을 꿋꿋하게 걸어가길 바랍니다. 추워졌습니다. 건강 유의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