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30㎝,몸무게 35㎏,자궁암과 결핵까지 앓는데다 정신지체 1급 장애를 안고 있어 의사표현도 쉽지 않은 유순자씨(39·여).
유씨는 지금 차디찬 수원구치소 감방에 수감돼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1월 19일.
술에 취해 늘 유씨를 때리던 남편 최모씨(당시 44·무직)는 그날 오후 8시부터 소주 2병을 비웠다.
놀러왔던 주민 두명도 돌아가자 술기운이 오른 남편은 언제나 그랬듯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바닥에 찧기를 수십차례. 유씨가 의식을 잃자 남편은 119로 “우리부부 둘다 실어가라”고 전화를 걸었다.
의식을 찾은 유씨는 바닥을 기어 주방에서 흉기를 꺼내 남편의 등을 한차례 찔렀고 놀란 남편이 몸을 돌리자 당황한 그녀는 다시한번 흉기를 휘둘렀다.
주민들과 119대원이 도착했을 때 집안을 서성이던 그녀는 어설픈 말투로 “119!,119”를 외치고 있을 뿐 남편은 이미 숨진 뒤였다.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7남매인 형제들과도 연락조차 되지 않을 만큼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삶을 살았다.
혼자 행상으로 생활하던 그는 지난 94년 폐결핵증세를 보여 대구의 요양소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과 96년 군포시 산본동 12평 임대아파트에 입주해 생활해왔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지급되는 월15만원 외에 금정역 앞 육교에서 야채행상을 해 생계를 꾸렸다.
옷장에 자신의 옷이라곤 단 두벌뿐. 남편에겐 늘 새옷과 수입 대부분을 용돈으로 줬지만 돌아오는 것은 술취한 남편의 주먹뿐이었고 한달이면 세번 정도 경찰이 출동해야 했다.
하지만 유씨는 “다들 날 싫어했지만 아내로 받아들인 남편이 제일 고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유씨의 이같은 처지를 잘 알고 있는 같은 아파트 부녀회 채인옥회장은 군포여성민우회,안양여성회,장애우인권문제 연구소등 9개 단체와 공동대책위를 꾸려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고 대한변협에 의뢰,무료로 인권변호사까지 선임하는 등 법을 향해 정상참작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1,2차에 걸쳐 7천7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수원지법에 제출했다.
채회장은 “사람을 죽인 것은 잘못이지만 무자비한 남편폭력에 대항한 무의식적 행동이었던 만큼 정상참작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은 유씨를 버렸던 우리 사회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장애우인권문제 연구소측도 이번 사건이 장애인을 버렸던 사회가 저지른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유씨가 풀려나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소 송지분 간사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라지만 정작 우리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을 버린자식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이제라도 우리가 버렸던 유씨를 사회의 품으로 돌려보내 건강한 삶을 살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李東榮기자·dylee@kyeongin.com
살인범은 장애인이 아닌 사회
입력 200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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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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