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투표함과 투표용지의 역사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는 처음으로 강화 플라스틱 투표함이 설치된다.
종전의 종이 대신 등장한 플라스틱 투표함은 덮개 안쪽에 고유 식별번호가 내장된 전자칩을 부착해 스마트폰으로 정규 투표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자칫문제가 될 수 있는 '투표함 바꿔치기'를 사전에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 목재 투표함부터 '스마트'한 투표함까지 = 부정시비를 막으려고 투표함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해왔다.
초기에는 나무로 투표함을 제작, 열쇠로 열고 닫았으며 1963년부터는 철제투표함으로 바뀌었다. 무게가 약 20㎏에 달해 옮길 때는 장정 2∼3명이 달려들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1991년 이후에는 조립식 알루미늄 투표함으로 바뀌었다. 무게는 절반 이하(8.5㎏)로 줄었고 귀퉁이 안쪽에 요철막대기를 대어 투표용지를 끼워넣지 못하게 했으며이중잠금장치를 다는 등 당시에는 '혁신'으로 불렸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골판지 투표함이 등장했다. 투표함 수요가 갑자기 증가하자 제작 비용이 늘어나면서 재료를 바꾸는 묘안을 낸 것이다.
일회용 조립식인 이 투표함은 실제로 제작과 보관·관리 부담이 줄어들긴 했지만 눈·비가 오면 투표지가 젖지 않을까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도입된 강화 플라스틱 투표함 제작 비용은 약 6만원으로, 1만2천∼2만6천원이 소요된 종이 투표함보다 껑충 올랐다.
◇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기·길이 57㎝ 투표용지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보유한 가장 오래된 투표용지는 1960년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에 쓰인 용지다.
기호는 문맹 유권자들을 위해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기를 사용했다. 이름도 세로쓰기로 한자와 한글을 같이 썼다.
1960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28명에 달해 기호 28번은 막대기 28개로 표시하기도 했다.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한 투표용지는 1971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름과 정당명은 한글과 한자로 명기했다.
1993년부터는 한글, 한자의 병용문화가 사라져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는 한글만 사용하게 됐다. 가로쓰기 때문에 투표용지가 세로로 길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과 1987년에 치러진 제5차, 6차 국민투표 때는 찬성·반대로만 나뉘어 '간결'하게 구성됐다. 반면 2003년 치러진 초대 계룡시의회의원 선거 때에는 후보자가 32명에 달해 투표용지 길이만 무려 57㎝에 달했다고 한다.
◇ 대나무·탄피로 표 찍던 시절 = 1970년대까지는 표를 찍는 데 대나무와 탄피가 주로 사용됐다. 구멍이 크고 확실한 '○'모양을 가진데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67년 5월 중앙선관위는 같은 해 6·8총선에 대비해 각급 선관위에 "기표 용구는 구멍이 크고 확실한 붓대, 탄피 등을 쓰되 필터, 솜 등으로 막혀 무효표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플라스틱으로 된 볼펜 자루가 사용됐다. 그러나 이 역시 지역에 따라 볼펜, 대나무 등 각양각색이었다.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용구가 사용된 것은 1985년부터다. 모양은 '○'을 유지하다가 1992년 제14대 대선부터 '○'안에 '人'을 넣은 모양으로 바뀌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용지를 접는 과정에서 인주가 다른 쪽에 묻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며 "人자가 14대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의 '삼' 자를 연상시킨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1994년부터는 '○'안에 '卜'자가 들어가는 형태로 바뀌었다. 종이가 접히더라도어느 쪽에 찍은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논란 소지를 없앤 것이다.
2005년부터는 기술의 발달로 인주 없이 찍을 수 있는 '만년기표봉'이 등장,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의식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투표환경도 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19일까지 서울 청계천변에서 열리는 투표참여 전시행사에서역대 선거기록 사진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