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크레인과 굴뚝들은 과거 이곳에 철강과 조선산업이 번성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빌바오는 장기적인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굴뚝산업이 아닌 문화산업과 연계한 환경친화적인 도시모델로 도시를 재생시키고 있었다.
지난 1997년 개관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의 상징이면서 도시재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랑크 게리의 설계로 7년만에 완공된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 최고의 파격적이고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대리석과 비행기의 외장재인 3만3천장의 티타늄을 이용해 만든 외벽은 빛나는 유리벽과 조화를 이루며, 흐린 날에는 '은빛'을, 맑은 날에는 '금빛'을 띠게 된다. 또 구겐하임미술관 외부 공간에는 4천 송이의 꽃으로 만들어진 토마스 쿤의 '강아지'와 루이 부르조아의 '거미'라는 대형조형물이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사실 1970년대 중반까지 빌바오는 스페인 최고 산업 중심지로 철강과 조선업을 주축으로 한 항구도시였다. 그런데 80년대 들어서 산업 침체로 공장들이 연달아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국의 철강과 조선업이 발전하면서 빌바오의 철강과 조선업이 쇠퇴하고 바스크독립 분리주의자들이 독립무장운동을 전개하는 본거지로 삼으면서 이곳은 매우 혼란스러운 도시로 전락한 것이다. 또 환경문제를 비롯해 슬럼화, 청소년 마약 등과 실업률이 35%에 이르는 등 시민들의 불안은 도시의 생명마저 위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빌바오시는 폐허처럼 변한 지역을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도심을 흐르는 네르비온강을 살리기로 했고, 강이 맑아지면서 선택한 것이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였다. 빌바오시는 당시 유럽 분관 부지를 물색하던 미국 뉴욕 구겐하임측에 부지와 건축비를 모두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몰락 직전의 산업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제안이었다.
밀라노와 제네바 등 세계적인 도시들도 미술관 유치를 제안해 온 터라 구겐하임측도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구겐하임이라는 이름만 걸어달라는 제안과 빌바오시의 확고한 추진의지 덕분에 유치가 성사될 수 있었다.
그러나 빌바오시가 막상 구겐하임미술관을 건립하려하자 95% 이상의 시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그것은 1천5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엄청난 지방재정이 투입돼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문화적 프로젝트를 통해 경제 부흥에 성공한 도시의 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먹고 살기도 힘든데 미술관 설립은 '사치'라는 여론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문화가 곧 미래의 산업임을 확신한 빌바오시 관계자들은 미술관 설립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고, 새로운 비전 제시를 통해 시민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설립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 첫해부터 방문 성과가 나타나자 다른 도시재생사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빌바오시가 단순히 유명한 미술관 하나 유치한 것으로 도시재생의 교과서가 된 것은 아니다. 도시혁신에 대한 비전을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제시하고, 철학과 소신이 분명한 지도자의 과감한 리더십으로 의사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여기에 주거지 재생, 공업용지의 문화용지로의 전환, 교통개선 및 대중교통 확충, 환경정화사업, 공공디자인 사업 등 문화와 환경을 주제로 도시 전체의 그림을 함께 그려가면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했다는 점이 인상깊다.
필자 역시 수원화성이 위치한 구도심을 재생시키기 위해 수원의 문화특성과 시민들의 소득수준, 소비패턴 등을 잘 파악해 특성있는 전략은 무엇인지 늘 고민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무엇이 공동체와 사람을 위한 것인지, 시민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수원화성행궁 옆에 새로 지어지는 현대미술관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