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해방후 조선어학회·한글학회 활동 연구(1945~1957년)'. 정 씨가 쓴 이 논문은 지난 주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2007년 3월 박사과정 진학후 6년만이다.
정 씨는 17일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2~3년 동안 어깨에 무거운 짐을 하나 올려놓은 것 같았는데 마지막 심사를 통과했다는 통보를 받고 어깨가 굉장히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학업 스트레스에 많이 시달렸습니다. 역사학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만 갖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이걸 왜 시작했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논문을 수정 보완해야 하지만 심적으로는 편안해졌습니다."
한국외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82학번이었던 정 씨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으며 제대후 방송 활동 등으로 복학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방송인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이 늘 마음 한쪽에 있었던 그는 2000년 39세의 나이에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정 씨는 스무 살이나 어린 학생들과 경쟁해 3년만에 인문학부를 조기 수석 졸업하고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해 4년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석사학위 논문 '이승만 정권 시기 한글 간소화 파동 연구'에서 1953년부터 2년동안 이어진 한글 간소화 파동을 분석했다.
석사학위에 이어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한글을 다룬 이유에 대해 그는 "요즘 '한글시대' '한글세대'라는 말을 쓰는데 사실 한글시대가 열리게 된 것은 해방 이후였고 한글세대가 등장한 것도 해방후"라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시대가 온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방후 혁명적인 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바로 제정된 것이 한글전용법입니다. 당시만 해도 국한문 혼용이 일반적이었는데 한글전용법이 제정되면서 언어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뀝니다."
특히 "한글전용법이 제정되고 공포되기까지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조선어학회가 일제 강점기에 맞춤법과 외래어표기법을 통일하고 표준말을 제정했기 때문에 해방후 국어를 재건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또 조선어학회를 이끈 이극로·이만규 등 북으로 간 학자들이 남북의 언어 동질성을 유지하려 애쓴 결과 남북한 언어 이질화가 심화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정 씨는 "한글 전용은 자랑스럽고 바람직한 선택이었다"면서 언어의 주체성 측면에서도 한글은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을 벌여온 그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고 해서 저 자신이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공부하면서 느낀 점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말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언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언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멘붕'(멘탈 붕괴의 준말, 정신적 충격이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는데 과연 무슨 뜻인지, 사람들이 왜 이 말을 쓰는지, 또 사회적·시대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언어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