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를 향하는 유권자들의 마음도 추우리라 짐작해 본다. 어제까지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분노와 저주의 언어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분노와 저주를 대리해 투표하는 처지에 몰렸으니 마음이 시린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반의 진영에 포함돼 나머지 절반을 배격하는 선택, 괴롭지 않겠나.
이번 대통령 선거는 모처럼 양자대결로 뜨거웠다. 보수진영은 열외없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우산 아래 집결했다. 진보진영은 우여곡절 끝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의 월계관을 진상했다. 그래서였나. 안철수의 단일화 곡예와 이정희의 무개념 원맨쇼 말고는 무미건조했던 선거전이 막판에 달아올랐다.
국민들은 신사와 숙녀의 페어플레이를 기대했다. 그럴 만도 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지금과 같은 정치는 안 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쇄신은 피할 수 없는 대선화두로 자리잡았다. 안철수를 중심으로 새정치 희구세력이 정치개혁을 시대정신으로까지 승화시켜 놓은 덕도 컸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안철수가 몇 번의 투정과 몽니 끝에 자진 하차한 뒤 양자대결이 현실화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의 분노와 저주가 곧바로 부활했다. 박빙의 판세가 전개되자 새정치의 희망을 노래하던 그 입으로 저주와 독설을 쏟아내고, 국민통합을 약속하던 선한 미소는 적개심에 불타는 표정으로 돌변했다. 한때 박근혜와 문재인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안철수가 낙마하자 정당이 현실을 장악했고 새정치의 꿈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여야의 공방에 실체적 진실은 유효한가. 아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보자. 민주당측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악성댓글 작성반을 운영했다며 20대 국정원 여직원을 지목했다. 이후 과정은 모두 건너뛰자.
여하튼 경찰이 그녀의 컴퓨터를 들고가 조사했고 결과를 발표했다. 댓글작성 흔적이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경찰의 조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는 새누리당의 역공과 경찰의 부실수사를 성토하는 민주당의 재반격이 어제까지 격렬하게 반복됐다. 국가정보기관과 공권력까지 무력화시키는 선거판의 생리를 체득해서일까.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선거 전에는 열어보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련한 경찰과 영리한 검찰은 무책임한 우리 선거문화를 선연하게 비추는 수많은 거울 중 하나이다.
유권자들은 역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미래를 노래하는 후보와 정당을 만나지 못했다. 정당과 후보들은 미래를 역설했지만 실현할 수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누가 인내해야 하는지 말한 적도 없다.
청년실업과 정년연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식의 공허한 미래를 열거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가 도래하면 특정한 계층과 세대는 개미지옥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행복하다는 막연한 미래에서 승부가 나지 않으니 결국 그들은 마타도어와 흑색선전이라는 마약을 삼켰다.
상대를 집권불가 세력으로 세뇌시키는 흑색선전에 후보와 당이 앞장서고 지성인들은 진영의 앞잡이로 전락해 추임새를 넣었다. 이렇게 새정치가 화두였던 18대 대선은 한국적 구태로 초토화됐다. 대한민국 유권자 대다수가 누가 대통령이 돼도 괜찮겠다는 희망 대신 절대 당선되면 안 되는 누군가를 버리는 선택을 위해 오늘 기표소 장막 안에 설 것이다.
그래도 기권은 안 된다. 스스로 선거에서 열외시키는 일이야말로 작금의 정치와 같이 무책임하다. 특히 부동층이 궐기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찰의 결과를 한 표로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 분노와 저주의 폐허에서 장미를 피울 수 있다. 장미는 단 한 모금의 물만으로도 꽃을 피운다. 내 한 표가 그 한 모금의 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