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18대 대통령선거전에서 유권자들의 의사표현과 정보 전달 수단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였다.
10년 전 대선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주로 인터넷 게시판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디지털 유목민' 방식으로 여론 형성 과정에 참여했다면, 이번 대선은 비교적 평균연령이 높은 'SNS 농경민'이 사이버 공간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1992년 제14대 대선 = '사이버 대선전'이 처음으로 주목받은 것은 김영삼 후보가 당선된 1992년 대선이었다. '하이텔'과 '천리안'의 유·무료 가입 회원이 약 30만명에 불과한 PC통신 초창기여서 사이버 대선전의 직접적 영향력은 크지 않았지만 활발한 토론과 의견 개진이 있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상 PC통신 메일을 이용하는 선거운동이나 PC통신 게시판을 통한 토론 주최는 불법이었다. 다만 정당이나 후보자가 전자게시판에 선전물을 올리고, 일반 가입자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를 밝히지 않고 정견·정책에 관해 토론하는 것만 허용됐다.
◇1997년 제15대 대선 =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1997년 대선은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등 4대 PC통신 가입자가 약 470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선거법이 개정돼 PC통신과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허용됐고, 이에 따라 PC통신 게시판은 선거 열기로 달아올랐다.
의견과 정보의 전달이 매우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파급력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후보들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그러나 '익명성'을 악용한 비방 등 불법 사례가 늘어나면서 선관위가 단속을 위한 상시 모니터팀을 운영하기도 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 = '사이버 대선전'이 최대의 위력을 발휘한 때는 2002년이었다. 당시 초고속인터넷 가입 회선 수는 1천만을 넘어서서 전체 가구의 약 70%가초고속인터넷을 사용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가구당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미국의 4배, 일본의 8배로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단연 가장 높았다. 또 이동통신 가입자는 3천200만명을 넘어서서 거의 모든 유권자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가 대선에 미친 효과는 과거 PC통신 시절과는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 준비단계부터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를 통한 여론 형성이 이뤄졌다.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노사모'가 대표적인 예다.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문자메시지를 통한 투표 권유와 정보 전달도 매우 활발했으며, 특히 이는 대선 투표일 당일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디지털 노매드(nomad)' 혹은 '모바일 유목민'이 되면서 이들이 대선 여론 형성에 직접 참여할 경우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 보여 준 것이다.
◇2007년 제17대 대선 =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 대선은 유선전화, 무선전화, 초고속인터넷 보급이 수년간 포화상태에 이른 상태에서 치러졌다. 이 때문에 사이버 대선전의 여건은 5년 전 제16대 대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모든 유권자가 '네티즌'이 되면서 네티즌의 관심은 대체로 유권자들의 선호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당시 주요 대선 후보자들 이름의 구글 검색 빈도 동향을 '구글 트렌즈'(trends.google.com)를 통해 살펴 보면 대체로 선거의 흐름과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미국에서도 2004년 대선부터 확인되는 현상이다.
◇2012년 제18대 대선 = 박근혜 당선인을 낸 이번 대선의 사이버 선거전에서 가장 큰 변화는 'SNS'와 '스마트폰'이었다. 디지털 생활양식이 비교적 젊은 연령층에 집중돼 있었던 과거와 달리 중·장년층과 노년층에까지 침투하면서 유권자들의 행동양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SNS와 스마트폰을 함께 사용하고 또 상호 보완적 성격을 지닌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함께 쓰는 유권자들이 늘면서 사회관계망을 통한 여론 형성은 폭발적인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트위터를 통해서는 지인들끼리 매우 빠른 정보 전달과 의사 교환을 하되,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안정적 친분관계를 기반으로 차분한 설득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SNS를 통한 정치적 의견 교환의 또 다른 특징은 '끼리끼리'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회적 친분관계와 상호 관심을 기초로 하는 SNS의 속성상 인연이 있는 사람들끼리 소식과 의견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즉 연령이나 사회적 배경 등이 유사한 유권자들끼리 의견 교환이 이뤄지기 쉬운 여건이다. 거꾸로 말해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유권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트위터에 비해 유명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페이스북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2002년과 2007년에 사이버 선거전에 참여한 젊은 유권자들이 속도에 중점을 두는 '유목민적' 행동 양식을 보였던 것과 달리, 2012년 사이버 선거전에서는 속도뿐 아니라 느긋함과 끈질김까지 겸비한 '농경민적' 행동 양식이 전 연령층에 걸쳐 자리잡은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트위터 등을 통한 미확인 소문과 네거티브 공세가 만연하고, 일각에서는 체계적인 여론 조작 의혹까지 제기돼 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조치를 취하는 등 부작용도 심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