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
새해 벽두가 되면 만나는 사람들끼리 부지런히 덕담을 나누며 서로가 잘 되기를 빌어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비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건강하십시오'라는 평범한 말을 주고받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염원을 생각하면 달리 더 좋은 인사도 없을 듯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꿈을 얘기하고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정직과 성실을 기반으로 한
창의·장인정신이 국가미래의 결정
활달하고 도전적인 우리 청춘들
물질·개인적 만족에 치우쳐
눈앞의 목표만 좇아서는 안돼
큰 그릇 만들고 가치있게 채워야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하며 꿈의 크기가 삶의 크기라고도 한다. 강태공은 나이 여든 살에 이르러서도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시지프스가 무거운 바윗돌을 끊임없이 산 위로 밀고 올라갈 때도 희망이 있었기에 허무를 견디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꿈과 희망은 우리를 바로 세우고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꿈과 희망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 더구나 일상에서 추구하는 행복과 건강 등의 꿈이 쉽게 구현되지 않는 걸 보면 그 이상의 꿈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일 것인가는 상상하기 힘들지 않다.

오이의 맛있는 부분을 먹기 위해서는 꼭지부터 먹어야 한다고 배웠고,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길다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목표를 향한 과정의 험난함과 창조를 위한 여정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이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듯이 물건을 물건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장인정신을 고취시키는 글이었다. 하루 종일 방망이 하나를 깎아서야 무슨 돈을 벌겠느냐며 빨리 해달라고 독촉하는 손님의 청을 어겨가며 공들여 방망이를 깎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노인의 모습은 치열하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옷과 맛있는 음식이야기가 담겨 있던 '설'이라는 글도 기억이 난다. 한 땀 한 땀 온 힘을 다해야 예쁜 옷이 되며, 푹 고아야 진국의 깊은 맛이 난다. "송곳 하나를 벼려도 하루가 걸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 과학기술 세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지혜라 하겠다.

정직과 성실에 기반한 창의정신, 장인정신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이탈리아가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장인의 숨결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마찬가지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사물의 이치를 천착하여 확고하게 알아야 진정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서권기문자향(書卷氣文字香)'이라고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 그림과 글씨가 될 것이다.

어설프게 공부하여 세상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꼴이 된다. 어느 탤런트가 TV에서 "한 장면을 위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연기하는 것은 '조금 더'의 차이가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을 아는 까닭입니다"라고 했던 광고문구는 매우 인상적이다. 어느 국악인은 "음악에 알이 박히려면 마음이 성장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오늘날 젊은이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활달하고 도전적이다. 하버드대의 교지편집장도, 경영대 학생대표도 한국인이라 듣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점이라면 먼 꿈보다는 눈앞의 목표를 좇는 현실주의적 성향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의지의 부족도 문제가 된다. 정신적 가치의 지향보다는 물질적 만족이 우선시되고, 사회적 인식보다 개인적 만족에 관심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큰 그릇을 만들고 그곳에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으로 가득 채운 뒤 하나 하나 풀어놓고 맨손으로 떠나야 한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던 그 '이름'까지 지우고자 했던 법정스님이 생각난다. 버리고자 했기에 영원히 아름답고 향기롭게 남은 분이다.

순수를 지키기 위해 그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의 모습에서 강직함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창조의 길은 험하고, 큰 그릇은 쉬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니 꿈과 희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 결과는 더욱 고귀하고 위대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