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승 아주대 사학과 교수
1919년 5·4운동의 여진이 계속되던 중국에서, 중국 사회의 진로와 관련하여 중요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중국 근대 지성사에서 '문제(問題)와 주의(主義)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논쟁은 후일 중국 공산당의 창당에 일조했던 리다자오(李大釗)와 문학혁명의 주창자였던 후스(胡適)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회가 추구해야할 목표 '주의'
반대자 분리위한 논리로 악용돼
새정부는 '문제' 해결 위해서라면
맞은편 손잡는데도 주저 말아야
진영논리 벗어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가야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위기에 직면한 국가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담론들이 경쟁하고 있었다. 온갖 말들이 넘쳐나던 정치계를 바라보면서, 후스는 추상화된 '주의'를 앞세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 혁명 당시 과격파인 자코뱅당에 의해 처형당했던 로랭부인의 말 - "오 자유여, 세상의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너의 이름을 빌러서 수행되었던가!"-을 인용한다. 후스는 현실적 기반이 없이 탁상공론식으로 '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초래할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다자오 역시 "'근본해결'이라는 말은 현재를 망각하고 노력하지 않게 하기 쉽다"는 이유로 '주의'를 공론(空論)으로 말하는 자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주의'를 한 사회가 합의한 이상이거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문제와 주의는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도 '주의'는 중요한 것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관점이 그렇게 대립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후스가 '주의'를 비판할 때 예로 든, 약탈적 군벌정권이 '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사례들-자신들의 정적들을 모두 '주의'자로 단순화시켜버리는-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리다자오 역시 현실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이상' 역시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양자는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주의' 때문에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고, 역사적으로 어떤 주의의 입장에 서있는가가 중요했던 적도 있었다. 아마도 일제시대의 항일운동가들에게 독립된 자주국가 건설은 의문의 여지없는 '주의'였을 것이다.

리다자오 식으로 해석한다면 '주의'는 한 사회가 추구해야할 합의된 목표나 이상이었으므로, 친일파들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이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민족 공동체의 목표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리다자오가 생각했던 '주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현실적 기반과 실천적 당위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주의'들은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서로를 변화시켜 왔고, 단일의 '주의'는 전체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실 속에서 '주의'는, 후스가 자유주의인 자신을 과격주의자로 몰았던 관리들을 한탄했던 것처럼, 이상을 표현하기 보다는 반대자들을 고립시키고, 분리시켜 배제하기 위한 논리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는 끝났고, 2월이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선거 결과에서 좌절과 슬픔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희망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하지만 승자나 패자 모두 더 이상 진영논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는 경제위기, 격동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남북문제, 대량의 청년실업과 빈부격차의 심화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공익적 관점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의 길이 있다면 반대파의 손을 잡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주의'(진영논리)를 가지고 논쟁하고 편 가르고 하는 시점은 지났다. '주의'를 내세워 중국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던 중국공산당의 지도자 등소평조차 '흑묘백묘론'(빛깔보다 쥐를 얼마나 잘 잡는가가 고양이를 판단하는데 중요하다는)을 통해 시장경제 도입에 대한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지 않았는가. 후스는 "아는 것은 어렵고, 행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영논리를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나, 그래도 그 길을 가야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는 한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