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꾸려가려면 그것을 통해 한국경제의 현안이 해결된다는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후부터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에 대해 다양한 쟁점과 도전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제한된 요소와 자원을 어떤 부분에 투입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부각될 것이며, 또한 한국경제의 당면과제인 '일자리'와 '혁신' 문제를 중소기업이 과연 해결하는지에 대한 도전이 등장할 것이다. 이들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명분을 갖고 있어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명분은 '중소 제조업'이라는 테마이다. 이는 케케묵은 전통적인 주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한국경제의 현안인 일자리와 혁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세계경제는 이미 중소 제조업 경쟁으로 진입했는데, 가장 적극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시절 서비스업 중심의 전략을 반성하면서 제조업 르네상스의 깃발을 내세운 지 벌써 2~3년이 되었으며, 독일은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중소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유럽 경제위기를 뚫고 고속성장을 누리고 있다.
이들이 중소 제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집중하는 이유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특히 대기업 위주의 경제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하려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가졌던 큰 오해는 제조업은 비선진국 산업이자 사양산업인 것처럼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렇지 않다.
혁신과 일자리 측면에서 제조업의 가치는 실제 놀랍다. 첫째, 제조업이 있는 곳에 연구개발(R&D)이 따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제조업이 인근에 있을 때 과학자들이 자신의 발명을 직접 검증할 수 있었고 또 그 발명을 상업화할 수 있었다.
생산현장이 멀다면 연구개발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혁신이 줄어든다는 발견이 쌓이고 있다. 독일 기계 산업의 높은 경쟁력에 대해 생산기술과 연구개발을 독일 내에서 공유한 덕분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자국 땅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전략을 펼치는 이유도 연구개발과 혁신을 강화하려는 방편인 것이다.
둘째, 일자리 창출 능력에서 제조업만큼 우수한 산업도 없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은 서비스업에 비해 5배나 더 큰 일자리 창출효과를 낸다고 한다. 일자리 창출이 국정의 핵심 어젠다가 된 우리 입장에서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이슈임이 분명하다.
미국 정부는 지난 2~3년 동안 제조업 부흥에 노력한 결과, 제조업에서 2010년에서 2011년 동안 약 32만8천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이는 2.7%나 늘린 유례없는 실적이다. 또한 제조업은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비스업이 일자리 창출 영향력에서도 떨어지지만 주로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비교된다.
셋째,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제조업의 가치는 크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제조업 1달러 생산은 1.4달러의 가치를 낳지만, 서비스업 1달러 생산은 0.7달러의 가치를 낳는 데 그친다고 한다. 제조업은 자체 혁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연관 서비스업의 혁신을 유인하는 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진다.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지속하려면, 국민들에게 그것이 한국경제의 현안을 해결하는 정책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중소 제조업이 주는 일자리와 혁신 측면의 높은 가치는 그 믿음의 단초로서 충분하다.
또한 중소 제조업은 주로 부품소재 분야이기 때문에, 이 분야가 발전한다면 기존 대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득력이 따라온다. 갈림길에 선 선택의 시점에서, 중소기업의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혜안(慧眼)에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거친 파고를 뚫고 반드시 중소기업 성공시대를 활짝 열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