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늘 새롭고 희망적이니 그간 선거과정에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토해 냈던 수많은 정치 공약을 순진하게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를 갖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출발할 때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상실감 안겨 준 역대 정부 많아
모든 일 하겠다는 과욕 대신
경제주체 역할분담 시스템 필요
건설·부동산, 대표적인 예
규제보다는 시장의 힘 빌려야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들은 출발할 때의 국민적 기대감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가면서 정부 실패로 인한 상실감을 안겨 준 경우가 많았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한 나라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해 나가려면 실패한 정부보다는 성공한 정부가 많이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정부가 성공하기를 굳게 다짐하고 이를 위해 최선의 준비와 노력을 다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왜 실패하는 것일까?
최고 의사결정자의 능력과 리더십,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 국민의 신뢰와 지지 그리고 참여 등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부의 법제도적 시스템이 아닌가 싶다.
군주시대와는 달리 다원화된 사회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국가발전단계를 보더라도 후진국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 있지만 선진국으로 발전해 갈수록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상당 부분이 시장(市場)과 시민사회에 맡겨지기 때문이다. 마치 도시가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정부(공공)의 역할은 토지 이용의 원칙과 토지 이용에 필요한 기반시설의 시스템을 만드는데 국한되고, 나머지 건물을 짓는 등 도시를 채워가는 것은 기업과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의 몫인 것과 같은 논리다.
정부가 성공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임기 내에 모든 일을 하겠다는 과욕을 버리고 지방정부, 기업, 단체, 개인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분담의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정부의 힘보다 시장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 고사상태에 있는 건설, 부동산 분야가 대표적인데 과거 호황시절에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는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장기적 불황시점에서는 뭔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정부에서와 같이 취득세 감면 시기연장과 같은 미봉책으로는 효과가 없다.
부동산 거래는 상호 거래하는 주체에 이익이 있어야 생겨나는 것이므로 양도세, 취득세 등 거래활동에 중과세(重課稅)를 적용하는 한 거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중산층이 주택을 팔고 살 때 내는 세금이 몇 백만 원이면 되던 것이 지금은 중과세 시스템으로 몇 천만 원을 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부동산실명제와 실거래가제도가 도입되어 과표(課標) 자체가 현저하게 높아졌고 여기에 중과세를 도입한 결과이므로 이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다원화된 경제주체들 간의 힘과 역할을 균형있게 조정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이념에 매몰되어서도 안 되고, 여론에 휘둘려서도 곤란하며, 시기를 놓쳐서는 더욱 곤란하다. 비합리적인 부동산 규제를 풀어서 시장을 살리겠다고 공언하며 출범한 현 정부가 지난 5년을 무기력하게 보낸 것은 아쉽지만 새 정부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시장의 기능을 훼손하고 경제주체들의 활력을 위축시켜서는 곤란하다. 시장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 지방정부에 맡기면 더 잘 할 수 있는 일, 기업 혹은 개인의 활력을 활용해서 해야 할 일 등을 구분해서 상호 역할 분담을 체계화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만이 정부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출발은 다소 답답하고 미흡하지만 그 끝은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