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에서 북한 대사관 통역관으로 출연한 배우 전지현.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등 최고 스타들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베를린'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표적이 된 비밀요원들의 생존을 향한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다. /연합뉴스

배우 전지현(32)이 '도둑들'의 뒤를 이어 첩보물 '베를린'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예니콜의 또 다른 버전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전지현이 '베를린'에서 보여준 모습은 '도둑들'의 예니콜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와이어 액션과 거침없고 톡톡 튀는 캐릭터의 연장선을 기대했다면 '베를린'은 그러한 기대를 무너뜨린다. 대신 불안과 외로움에 흔들리는 한 여인이 스크린을 채운다.

23일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전지현은 "무거운 이야기여서 현장 분위기도 무거웠다"며 "그러다 보니 역할에 자연스럽게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베를린'은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표적이 된 비밀 요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렸다.

전지현이 맡은 역은 독일에 파견된 북한 첩보원 표종성(하정우 분)의 아내이자 음모에 휘말리는 북한 대사관 통역관 련정희.

▲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에서 북한 대사관 통역관으로 출연한 배우 전지현.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등 최고 스타들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베를린'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표적이 된 비밀요원들의 생존을 향한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다. /연합뉴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남편의 곁에서 외로움과 불안감을 속으로 삭여야 하는인물이다.

이처럼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4인용 식탁'(2003) 이후 9년 만이다.

"류승완 감독님과 작업해보고 싶었고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선지 의욕이 앞섰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날짜가 다가오면서 나 자신도 상상이 안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북한 사투리를 하고 아이가 있고, 과거에 아픔이 있는 여자를 연기하는 게 겁부터 나더라고요. 그렇지만 상상이 안 가는 부분을 다 뛰어넘고 싶었죠."

전지현은 련정희를 연기하는 데 결혼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련정희를 하면서 결혼이라는 개인적인 변화로 인해 어른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연기를 할 때 자신감이 붙었달까. 배우들은 캐릭터가 이럴 거라고생각하며 연기하는 게 대부분인데 실제 결혼을 하고 주부 연기를 하니까 자신감이 생겨서 거침없이 표현했던 것 같아요."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두려움을 뛰어넘고 싶었다는 그는 생소한 북한 사투리가 오히려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 돌아봤다.

▲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에서 북한 대사관 통역관으로 출연한 배우 전지현.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등 최고 스타들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베를린'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표적이 된 비밀요원들의 생존을 향한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다. /연합뉴스

그는 "발음이 딱딱 정리되는 느낌이 있어서 감정도 동시에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배우 중 사투리 선생에게 칭찬을 가장 많이 받아 연기에도 탄력이 붙었다"고 웃었다.

그러나 독일 현지에서 진행되는 촬영에 '홍일점'으로 참여한 탓에 현장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았다.

"'도둑들' 현장은 분위기가 밝았는데 '베를린'은 영화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분위기도 무거웠어요. 또 해외에서 촬영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남자들 위주로 진행되다보니 외로웠죠. 감독님도 여배우를 좀 어색해하시는 편인데 저도 낯설어하는 성격이어서 감독님과 친해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그러나 상대역 하정우와 호흡에 대해서는 "하정우 씨가 워낙 즐겁고 재미있어서 인물들의 이야기는 진지한데 우리는 웃으며 연기했다"고 흡족해했다.

다시 한 번 류승완 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싶다는 전지현은 다음번에는 련정희와달리 류 감독의 장기인 액션을 충분히 살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전지현은 2000년대 초 다수의 CF와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로 스타덤에 올랐다.

▲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에서 북한 대사관 통역관으로 출연한 배우 전지현.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등 최고 스타들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베를린'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표적이 된 비밀요원들의 생존을 향한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다. /연합뉴스

그러나 후속작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 대중에게 배우보다 CF 스타로 각인됐다. 해외 작품 활동에 주력하면서 국내 대중과 소통할 기회도 적었다.

지난해 개봉한 '도둑들'은 전지현에게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회가 됐다. 대중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가는 데는 결혼도 한몫했다.

얼마 전 '참한 새댁'이란 콘셉트로 냉장고 광고 촬영을 한 전지현은 "기분이 묘했다"며 "배우로서 이만큼 성숙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감회를 전했다.

그는 "내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지 않다"며 "나를 봐왔던 관객이 나이가 들어가는데 나만 정체돼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지만 그에게 인생의 1순위는 일이 아닌 개인의 행복이다.

"어렸을 때부터 일에 '올인'하고 싶지 않았어요. 일이 인생의 전부가 돼버리면 일이 없을 때 힘든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 일이 삶의 전부라면 제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일에 비중을 크게 안 두니까 실망하는 부분도 적은 것 같아요."

▲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에서 북한 대사관 통역관으로 출연한 배우 전지현.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등 최고 스타들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베를린'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표적이 된 비밀요원들의 생존을 향한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다. /연합뉴스

어느 위치에 있든 만족하려고 한다는 그는 스스로 "한 번도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면 실수하는 것 같다. 특별하다 생각할수록 외로워지는 길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지금 그의 꿈은 오랫동안 배우를 하는 것. 어떤 역할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그는 "과거의 수식어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과거의 모습이 잊히고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게되겠죠. 다양한 연기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배우로서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게 제 목표에요. 때마다 저한테 맞는 수식어를 달면서 배우 생활을 하고 싶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