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처럼 '건강한' 어린이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달리 아픈 아이에 대한 투자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지난해 경기도에 어린이 병원이 최소 2곳은 필요하다는 연구용역 결과까지 나왔지만, 1년이 지나도록 후속 조치는 없는 상태다. 그동안 도내 어린이 환자들은 서울 등지의 병원을 전전하고, 한밤중 응급실에서 떨며 병을 키웠다. 경기도내 어린이 환자에 대한 진료체계의 실태와 어린이 전문병원의 필요성을 집중조명한다. ┃편집자 주
장기입원 힘들어 철새 신세
면역력 약해 원내감염 노출
민간병원 "돈 안된다" 기피
올해 10살인 딸을 키우는 A(39·여)씨는 지난해의 일을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딸이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면서 유명하다는 병원은 모두 찾았지만 입원이 가능한 기간은 하나같이 길어야 3주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증세가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바로 병실을 빼줘야 했기 때문에 철새처럼 병원 이곳저곳을 옮겨다닐 수밖에 없었다며 가슴을 쳤다. "딸처럼 완치 가능성도 없으면서 크게 돈도 되지 않는 난치병 어린이 환자들이 병원으로선 불편한 존재일 것"이라면서도 "일년에도 몇번씩 병원을 이곳 저곳 옮겨다니는 것도 이젠 지쳤다"고 토로했다.
지난 26일 자정께 수원의 한 병원 응급실.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60여명의 환자들 속에 부모품에 안긴 어린이 환자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들것에 실려들어 오는 중증환자들도 여러명.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 환자들이 원내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지만, 어른 환자들 틈바구니에서 불안에 떨며 기다리는 것만이 어린이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5개월된 딸을 안고 응급실에 앉아있던 B(32)씨는 낯선 환경에 겁먹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어른 환자들 사이에서 기다리다 보면 아이에게 없던 병도 생길까 걱정된다"고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기다리는 시간마저 길어 더 걱정되는데, 어린이 환자들만 따로 진료하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였다.
같은 날 서울의 한 어린이 전문병원. 5살된 아들의 언어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C(35·여)씨는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며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점이 좋고 의료진들도 다른 곳에 비해 아이가 가진 어려움을 많이 배려해준다"고 말했다. 맞벌이로 아이에게 전념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C씨는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이런 어린이 전문 병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엄마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김재복 서울시립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어린이 환자들은 돈이 안돼 민간병원에서 기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공공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갈 곳이 없어진다"며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 중 경기도에서 온 환자가 절반인데, 경기도 아동 수를 고려하면 이런 어린이 병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기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