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수 서울본부장
어머니 육영수를 적의 흉탄에 잃었다. 파리 유학을 접고 귀국해 어머니 대신 고운 한복 차림으로 국빈을 맞이하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떠맡은게 스물세살 무렵. 아버지 박정희도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

측근인 김재규의 권총에 숨을 거두었다. 쿠데타로 집권해 한강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거인의 족적을 남긴 아버지의 서거 이후 그녀는 철저하게 대중의 시선 밖에서 은둔했다. 장장18년이다.

은둔의 세월을 채운 건 배신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동생들의 크고 작은 말썽이 행여 부모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세월은 또 얼마나 길었는가. 인내하고 침묵하는 일 말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운명일까. 아니면 한 시대의 완성을 위한 역사의 소환이었을까. 박근혜는 얼굴엔 육영수의 미소를 머금고 흉중엔 박정희의 뚝심을 품고 정치에 입문했다. 아버지의 후광과 어머니의 선업이 그녀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그녀의 원칙과 소신은 대쪽 이회창을 압도했고, 그의 낙마 이후에는 야당으로 전락한 보수당의 잔다르크로 떠올랐다.

천막선거로 탄핵역풍을 정면돌파했고 진두지휘한 모든 선거에서 승리해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녀가 보수의 희망으로 빛나던 시절 진보정권은 지리멸렬했다. 박근혜는 이명박과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대안없는 차기 대권후보로 우뚝 섰다.

박근혜는 정치의 한 복판에서 아버지의 정적들을 만났다. 북한의 김정일과 만난게 2002년. 그는 어머니 육영수 시해의 사주자인 김일성의 아들 아닌가. 사적으로는 원수의 처지이지만 공적으로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악수를 나누어야 하는 남북의 2세 정치지도자들. 박근혜가 바로 그 장소 그 시간에 품었을 인간적 소회는 문학적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

2004년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았다. 박정희의 시대적 맞수였던 그에게 아버지 시대의 박해를 사과했다. 다행히 김대중은 그녀에게 "지역갈등 해소의 적임자"라는 덕담으로 화답했다.

박근혜가 밟아 온 삶의 궤적에 고인 스토리 정도면 토지에 버금가는 대하소설도 가능하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에 출중한 스토리텔러가 있었다면 선거가 조금 더 쉽지 않았을까. 18대 대통령당선인 박근혜는 오는 2월 25일 대통령으로서 청와대에 들어간다. 핏물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던 그 청와대다. 33년3개월만에 국민이 선출한 최고권력자로 복귀한다.

박근혜가 난관에 부딪혔다. 김용준 총리지명자 때문이다. 장애를 극복한 청렴한 전 헌법재판소장의 맨 얼굴에 국민은 실망했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충격도 클 수밖에. 그나마 김 총리지명자는 자진사태 용단을 내렸다. 박근혜의 첫 시련이 고비를 넘었다. 하지만 이같은 시련은 계속 될 것이다. 원칙과 소신이 간단없이 시험대에 오를 테니 그렇다. 원칙과 소신만큼 포용과 통섭의 리더십을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의 해피엔딩을 희망한다. 대통령 박근혜의 역사적 의미는 각별하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종결할 것인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가 가능할 것인지, 세대와 계층과 지역의 반목을 해소할 수 있을지,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이루어낼지. 이 모든 것이 박근혜 정부가 5년 뒤 어떤 마침표를 찍을지에 달려있다. 그녀가 해피엔딩으로 마침표를 찍는다면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시대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

"한 개인이나 계급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 또는 계급의 독자적 이익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알면 바로 그때부터 스스로를 숭배하기 시작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권력을 향한 무서운 경고다. 박근혜는 지금 자신이 살면서 마주했던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봐야 한다. 시련을 극복할 용기와 지혜가 보일 것이다. 역사가 아버지에 이어 자신을 소환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