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을 건전하게 보호·육성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관련법들이 유명무실하다. 겉으론 그럴듯 하게 포장해 놓았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지키지도 못할 법규정과 청소년정책 부재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9시께 부평구 청천동 청천중학교 입구. '청천중 입구 100m'라는 푯말이 걸려있는 이 일대엔 접대부를 고용해 술을 파는 소위 '방석집' 23개가 버젓이 대로를 끼고 늘어서 있다. 이들 술집은 낮엔 문을 닫아놓고 있다가 저녁 무렵부터 분홍빛 조명을 켜놓고 행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며 영업에 열을 올린다.

 밤늦게 귀가하던 학생 4명이 이 곳을 지나가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술집 안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김모군(14)은 “어른들이 여자 접대부를 앉혀 놓고 술을 마시는 곳으로 알고 있다”며 “가끔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교보건법상 학교정화구역 200m 범위내에 들어설 수 없는 유해업소들이 청천중학교 주변에만 50여개에 달한다. 학생 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 일. 그러나 이들 업소는 학교가 들어서기 전부터 영업을 해왔다는 이유로 구청과 경찰의 묵인아래 장사를 하고 있다.

 또 성인용품 전문점 등 신종 유해시설의 경우 단속법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규제대상에서 제외된 상태. '밑그림' 없는 법규로 인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청천중 원모교사는 “학교정화구역내에 유해업소들이 많아 학생 생활지도에 애를 먹는다”며 “워낙 유해업소가 많아 사실상 학교보건법이 있으나마나하다”고 하소연했다.

 최근들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는 '음란 광고물'도 심각한 문제다. 주로 안마시술소나 단란주점들이 홍보를 위해 이들 광고전단을 뿌리고 있으나 전혀 단속되지 않고 있는 실정. 대부분 청소년들에게 성적 충동심을 유발하는 낯뜨거운 여성들의 나체사진을 실은 전단은 주택가는 물론 학교주변에까지 마구 뿌려지고 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선 '야한' 광고전단을 종류별로 모으는 취미마저 생겼을 정도다. 이 역시 '청소년보호법' 제15조 '유해매체물의 표장 규정'에 저촉되지만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부평구청 관계자는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검열을 받도록 법을 적용해 광고물관리법으로 단속하고 있지만 형식적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16일 오후 10시께 남구 숭의동의 특정구역. 남구는 올해 초 이 곳을 '레드존'으로 지정하고 청소년들의 출입을 막기위해 입구에 초소를 세워 놓았다. 하지만 관리할 사람이 없어 초소는 먼지만 잔뜩 뒤집어 쓴 채 방치돼 있었다. 행정당국의 무관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현장인 셈.

 '청소년보호육성법'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청소년을 위한 건전한 공간을 조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의 이미경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건전한 놀이문화를 이끌어내기위한 법들이 하나같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며 “인현동 화재 참사의 교훈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李喜東·車埈昊기자·dh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