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개입의혹을 받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9)씨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사이트 2곳에 민감한 정치·사회 이슈 등과 관련해 모두 120개의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가 올린 글 대부분은 정부·여당의 입장을 옹호하고 야당에는 비판적인 내용이어서 이런 활동이 선거에 개입한 것 아닌지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경찰은 이런 글이 있음을 확인하고도 그동안 계속 숨겨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31일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8월 28일부터 불법선거운동 의혹이 불거진 12월 11일까지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와 '보배드림'에 각각 91개, 29개의 글을 작성해 게시했다.

해당 글은 주로 4대강 사업이나 해군기지 건설 등 정치,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이 일었던 이슈와 관련됐으며 대부분 정부나 새누리당에 유리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12월 5일 '남쪽 정부'라는 제목의 글은 '어제 토론 보면서 정말 국보법 이상의 법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고 표현하는 지경이라니'라고 돼있어 전날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남쪽 정부라고 말한 것을 비판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논란에 대해서는 북한의 신병안전보장 등에 관한 약속이 없는 한 안된다는 내용으로 반대 취지의 글을 올렸다.

김씨의 글에서 주요 대선후보 4명의 이름과 새누리당·민주당 명칭 등 구체적인 대선 용어가 적시된 흔적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 8개의 특정 키워드를 기준으로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은 그러나 국정원 직원인 김씨가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정치·사회문제에 대해 특정 정당을 옹호하는 내용의 글을 지속적으로 작성한 만큼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글 말고도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게시물에 반대 아이콘을 누르는 등 일관되게 여당이나 정부에 유리하게 의사를 표시했다"며 "횟수와 상관없이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씨는 지난 25일 3차 소환조사에서 11개의 아이디를 사용해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선거법이나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부인했다.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요원으로서 종북단체의 활동 등을 파악하는 게 고유 업무라는 주장이다.

권 과장은 "김씨는 진술에서 선거에 개입하려고 글을 올린 게 아니며 그런 글들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게 자신의 업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대선 관련 게시물에 99회에 걸쳐 '찬반 표시'를 한 것에 대해선 "수준 이하의 글에 반대 표시를 누를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정상적인 대북심리전 활동일 뿐 선거 개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김씨는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인터넷 글을 게재한 사실이 없으며 김씨가 올린 글은 인터넷상의 정상적 대북심리전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한편, 김씨가 정치·사회 문제와 관련한 글을 올린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민감한 내용을 은폐해 김씨의 대선 개입 의혹을 축소시키려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김씨가 사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기는 했지만 대선과 관련해서는 '찬반 표시'만 했을 뿐 글은 올리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서장은 이날 "당시 대선 관련 글이 없다고 말한 건 8개의 대선 키워드가 포함된 글이 없었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120개에 이르는 게시글을 확인한 만큼 이제는 대선 관련 글이냐 아니냐를 떠나 글의 성격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큼 위법성이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