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한국인의 평균 연령이 80을 상회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다시 설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생을 60으로 생각하고 70이 드물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가고 100세 건강시대를 맞이했다.

이제 누구나 60 이후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20년 이상 연장된 생에 대해 나름대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느라고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늦게 다시 시작하는 젊은 노인들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뒷방 늙은이로 자처하고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젊은 노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한 축이 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가른 것은 5060세대라고 한다. 이제 사회의 중심 동력을 2030세대와 더불어 보다 성숙한 연령의 세대가 나누어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세대는 젊고 유능한 신세대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노년세대에 대한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생산동력은 약화될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산업 현장에 노년 인구가 가장 많이 취업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속도 등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노년인구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분야 중의 하나가 문학일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상당 수준의 전문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펜만 잡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초보적인 글쓰기이다.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초보적인 글쓰기가 아니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중심에 있어서도 세대 이동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2010 경인일보 신춘문예에서는 74세의 여성이 시부문의 당선자가 되었고 2012년에는 71세 할아버지가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에 당선했으며 70에 한글을 배우고 73세에 첫 시집을 낸 할머니의 시집 '치자꽃 향기'가 2012년 우수문학도서가 되었다. 이런 소식은 국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2013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다카와 문학상에 75세의 문학소녀가 선정되었으며 98세에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으로 등단하여 일본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던 시바다 할머니가 1월 20일 새벽 101세로 행복한 노년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한국의 여러 문학잡지에서도 신인상 최종 후보에 노인 지망생들이 몰리고 있어 심사자들이 나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진 괴테의 '파우스트'는 60여년에 걸쳐 집필되었으며 80에 이른 만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또한 중년에 시작하여 노년에 이르는 25년 동안 집필된 작품이다. 원숙한 경험이 원숙한 작품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한국의 노년세대가 지닌 문학적 열정은 그 이전 다른 어떤 세대도 누리지 못한 독자적 존재감의 표현이다. 그들은 일만 하고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세대가 아니라 일하고 남은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에 더 본질적인 존재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 세대이다.

물론 누구도 돌보지 않아 고독하게 죽는 노인들도 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인 부부도 있다. 그러나 생활보호대상자이지만 사후 어려운 아이들에게 써달라고 자신의 전세금을 기탁한 노인도 있다. 노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중대한 문제이다.

한 단체가 제정한 '신노년문학상'에 응모작이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100세 건강시대를 맞아 문학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분들을 청춘노년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문학을 청춘노년문학이라 부르고 싶다. 인생의 사이클이 달라진 상황에서 청소년문학만이 아니라 청춘노년문학에도 새로운 주목이 필요하다. 행복한 노년은 부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청춘은 나이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청춘노년문학 지망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