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힐링' 코드가 어느 겨를에 우리의 일상에 넘쳐나고 있다. 예능프로와 출판에서 시작한 힐링문화에 음식과 외식산업, 건강과 여행산업의 마케팅도 의존하려는 기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직간접적으로 힐링 코드를 내세우거나 활용한 바 있다.

힐링(healing)이란 본래 상처난 몸이나 마음을 치유한다는 말이니 의사나 종교인들의 전담 분야이다. 90년대 이후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강조한 웰빙(well-being) 코드가 트렌드였는데 몇 년 사이 힐링이 대세가 되었다. 지금의 힐링 열풍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자기계발 열풍과 결합되면서 강력한 문화코드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을 달래고 삶의 의지를 북돋워 주는 일을 해주는 멘토들의 역할은 소중하다. 그런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따뜻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힐링이 문화코드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삶이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역설적 방증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턱대고 반기기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로 인해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져든 결과로 분석한다.

힐링해야 할 상처는 대부분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럽발 경제위기와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성장의 결과는 대기업과 일부 계층이 독식하고 중산층은 저소득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빈부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된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경제 위기는 고스란히 서민 경제의 위기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가정경제의 기반도 취약해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생겨난 '하우스 푸어'들에게, 늘어만 가는 교육비가 힘겨운 서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당분간 꿈이다.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갈등과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바 세대간 갈등이다.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2040세대와 5060세대가 총력전을 치르듯 투표한 결과였다. 51 대 48이란 근소한 차이로 승패는 결정되었지만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중산층의 감소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지역갈등도 해결될 조짐이 요원한 판국에 세대갈등까지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두 세대들이 직면하고 있는 좌절과 불안감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경제적 요인이다. 청년들은 학비와 일자리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베이비부머인 50대는 주택과 노후문제로 불안한 형국이다.

예능프로에서의 힐링이나 이른바 양산해 내는 힐링상품들을 보면 상당수는 함량 미달이어서 기껏 '하루만의 위안'을 넘어서기 어렵다. 수술이 필요한데 자가치료를 권하거나, '험한 세상'과 무관하게 '착하게 살자'는 식의 해묵은 교훈들을 새로 포장한 상품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개인들이 앓고 있는 뿌리깊은 우울증이 치유될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개인을 좌절시킨 원인이나 구조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면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무력감을 운명론과 순응주의로 대체해 버리는 위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짜로 힐링해야 할 대상은 상처받는 개인들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절박하게 만들고 국민들의 일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최대의 힐링은 민생이며 소통불능에 빠진 사회의 복원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 그리고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주체는 국가와 정부, 정치인들이며 사회 지도층들일 것이다.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절망감에 의존하여 표와 인기를 얻을 것이 아니라 약속대로 '사회의 힐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