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국공주는 한 나라의 왕비입니다. 차가워 보이지만, 속이 깊고 강한 여자죠. 하경은 아무리 강한 척 포장해도 결국은 아이에요."
불과 몇 개월 전 SBS TV '신의'에서는 한없이 차갑고 도도한 한 나라의 왕비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승리 고등학교 교복을 입더니 'S대'를 향해 끊임없이 매진하는 최상위권 학생이 됐다.
하늘 높은 콧대, 도도한 표정, 정(情)과는 멀어 보이는 무심한 말투까지, 닮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다르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KBS 2TV '학교 2013'의 송하경을 연기한 박세영(25)이다. 지난 5일 을지로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이강주(효영 분)나 친한 친구 앞에서는 18세 고등학생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죠. 노국공주가 강한 여자의 모습이라면, 하경은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표정 등 보이는 모습이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면서도 "시대와 나이대가 모두 다르다. '고등학생은 그저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니 진짜 학생이 된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차가운 가면 속에 따뜻한 연모의 정을 품었던 노국공주와는 달리 하경은 극 초반과 후반 180도 다른 모습이 됐다. 마냥 학생다운 미소를 띤 채 절친 강주와 장난도 쳤다. 그 자신도 "갑자기 송하경이 헤퍼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며 웃는다.
"하경의 마음이 열리기 전에는 다른 친구를 무시하고 내려다보고, 그만큼 차갑고 도도해 보였죠. '내가 너희보다 어른이고, 공부도 잘하니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강주와 화해한 이후로는 마음을 '확' 열어젖혔죠. 그게 하경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요."
박세영은 "원래 여자들은 몇 개월간 사이가 좋지 않아도, 한순간에 풀린다"며 "이후 툭툭 뱉는 말 하나하나가 아이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고 되돌아봤다.
모교 교정을 떠난 지 어느덧 6년이 된 그는 자신의 학창 시절과 하경의 공통점으로 단정한 머리, 비슷한 교복 디자인, 학생이라는 신분을 꼽았다. 그만큼 닮은 면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경은 늘 1등이었잖아요. 저는 공부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어요. 쉬는 시간에는 늘 복도에 있었어요. 친구들과 복도에서 수다도 떨고, 매점도 갔죠. 쉬는 시간 10분 동안 그렇게 열심히 놀다가 종이 치면 쑥 들어갔다가, 다시 쉬는 시간에 우르르 나왔어요.(웃음)"
그는 극 중 교실 뒷문에 있던 거울을 언급하며 "하경은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다 보니, 촬영할 때 뒷문 거울을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학교의 분위기나 풍경은 비슷한 것 같아요. 늘 시끄럽고 정신없죠. 여학생은 끼리끼리 모여서 거울보고, 남학생은 모여서 뛰어다니고. 표현하려는 마음은 똑같은데 그때보다는 방법이 조금 더 세진 것 같아요. 더 솔직하고, 당돌하게 이야기한다고나 할까요."
하경은 누구나 인정하는 모범생이었지만, 고등학생 박세영은 복도에서 발바닥도 맞고, 교실에서 의자를 들고 벌도 서고, 손바닥도 맞았단다. 그의 학창 시절 추억담이 꼬리를 문다.
"정인재(장나라) 선생님이 손바닥으로 학생들을 때렸던 것처럼, 매로 때리는 게 아니라 학생과 박치기를 하는 선생님도 계셨어요. 한 선생님은 자기가 주먹을 대고 학생들에게 박치기를 시키셨죠. 선생님도 아파하셨어요.(웃음)"
체벌이 점점 사라지던 박세영의 고교 시절 풍경이다. 체벌이 아예 자취를 감춘 '학교 2013'에서 인재는 자신의 손바닥을 '사랑의 매' 삼아 학생들의 손바닥을 때렸다.
"촬영장에서 우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선생님이 저렇게까지 하시는 데에 대한 감정에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요. 장나라 선배님이 생각보다 손이 맵던데요. (웃음)"

지난 2011년 SBS 주말극 '내일이 오면' 이래 그는 KBS '적도의 남자'·'사랑비', SBS '신의'를 거쳐 KBS '학교 2013'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1년 3개월 남짓한 시간에 무려 5편의 드라마에서 얼굴을 알린 것.
"정신없이 달려왔다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요. '내일이 오면'을 하면서 '적도의 남자'를 중간에 들어가기도 했죠. 두 작품은 캐릭터가 상반돼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 때문에 더 재미있기도 했어요. 표현할 때 완전 반대로 하면 됐거든요."
그는 "내가 잔병이 많아 체력이 약한 편인데, 일을 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졌다"며 "긴장이 풀려 있는 것보다는 바쁠 때 오히려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밤샘 촬영도 '신의' 때 한번 해보니 '학교 2013'은 덜 힘들었다"고 말했다.
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더 많은 작품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제 모습은 조금밖에 보여 드리지 않았어요. 1년밖에 되지 않은 걸요. 제 나이대에 맞는 밝고 발랄한 역할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강하지만은 않고 나약하고 여린 역할에도 욕심이 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