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자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부모 부양에 지친 50대이상
박근혜 공약에 압도적 지지 불구
슬그머니 없었던 일 될까 불안
전체 노인에 20만원 지급안이
세부계획서 차등 지급으로 변질
명절 부엌수다방은 들끓었다


설 연휴가 끝나고 나면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밥상머리에서, 부엌에서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이 설 민심으로 모여 정책 결정에 반영되기도 하고, 몰랐던 이야기, 또 굳이 몰라도 될 이야기들이 전국을 한 바퀴 돌면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번 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집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공약 실천 문제가 주된 관심사였다. 특별히 부엌수다방의 주 메뉴는 기초노령연금 문제였다. 부엌수다방 참가자 대부분이 새누리당 텃밭인 경상도 거주자인 데다 89%가 투표에 참여해 박근혜 후보 당선에 지대한 공헌을 한 50대, 특히 여성인 며느리부대원인 만큼 입장과 팩트에 대한 이해 정도가 각기 다르고 그 해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하게 갈리지 않은 의견은 공약대로 기초노령연금은 지불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우리나라 인구고령화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인 빈곤 문제이다.

지금 어르신의 노력으로 다음 세대인 우리는 세계경제 10위권의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이 시대를 물려준 노인의 빈곤율은 45%로 OECD 국가 중 최악의 성적을 보여준다. 이러다보니 이번 대선 과정에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공약에 관심이 많이 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내 문제에 더해 부모 부양문제에 지친 50대 이상 국민은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제공하겠다는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인수위가 집권 로드맵을 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이미 여러 차례 슬그머니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수많은 공약처럼 기초노령연금도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닌지 온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다.

애초 정부 예산 시스템이나 선거과정 인기몰이에 감추어진 空約을 찾아내는 측에서는 과연 이 공약이 지켜질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연 약 7조원에 달하는 재원 조달방안이 불분명하고, 세부적인 운영방안도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인수위에서 실제 세부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사실이 된 것 같다. 국민연금 연계를 포함해 매우 많은 설들이 떠돌았는데 설 연휴 후 첫 보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을 4그룹으로 나누어 국민연금 미가입자 중 하위 70% 노인에게는 월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고 나머지 그룹은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것이 최종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당장 생계가 어려운 노인과 상위계층 노인의 경우 20만원의 의미는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논란 과정에서 보였듯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노령연금 역시 복지 철학과 복지 원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잘해서가 아니라 이분들의 노고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이제는 인정하고, 부의 분배 문제의 책임을 어르신께 돌리지 말자는 것이다.

일부에게 세금을 거두고 일부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그 기여를 인정해 모두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모두가 재정적 책임을 지는 보편적인 복지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나라 복지를 발전시키는 길이 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제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전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초노령연금제도는 꼭 지켜내야 한다.

며느리의 모임처 부엌수다방 수준은 여기까지였다. 연금 300만원을 받을 예정인 집이나 개인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정이나, 그나마도 전혀 준비가 없는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가족이나 연금과는 별도로 국가는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올 추석에는 부엌수다방 주제가 뭐가 될지 궁금하다. 최소한 기초노령연금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