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와 수사지휘 검사로 인연을 맺었던 노회찬(57) 진보정의당 의원과 황교안(56) 법무장관 내정자가 하루 시차를 두고 운명이 엇갈렸다.

X파일 내용 중 일부인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노 의원은 14일 대법원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X파일 사건 수사팀을 총괄 지휘한 황교안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전날 박근혜 정부의 첫 법무장관 내정자로 지명됐다.

특히 두 사람이 1976년 경기고를 함께 졸업한 동창생이어서 법조계 안팎의 시선을 끌었다.

두 사람의 '꼬인' 인연은 2005년 7월 MBC가 옛 안기부 도청 조직인 '미림팀'의 도청자료를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미림팀의 불법 도청 녹음테이프인 'X파일'에는 1997년 대선 전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삼성 측이 정치권 및 검찰 고위직에 명절 '떡값'을 제공하기로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입수한 노 의원은 그해 8월18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앞서 보도자료를 배포해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됐던 전ㆍ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의 자료를 올렸다.

'떡값 검사' 명단에 올랐던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은 노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즉각 검찰에 고소했다.

고소를 당한 노 의원은 당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 X파일' 내용에 대한 본격 수사의 신호탄이 되리라는 의미에서 크게 환영한다"며 "승소 패소는 중요하지 않다. 진실만 밝혀진다면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 의원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황 내정자가 이끈 검찰 수사팀은 불법 도청 자체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반면, X파일에 담긴 삼성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진실 규명의 한계를 드러냈다. 삼성 관계자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떡값 검사'로 지목된 인사들도 전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데다 고발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뇌물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당시 수사팀의 판단 근거였다.

시민단체는 검찰이 '재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5월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에도 노 의원은 "검찰 스스로 진실 규명을 회피했기에 내가 직접 나서 법정에서 진실을 규명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의 기소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이후 1심과 2심, 상고심, 파기환송심에 이어 이날 상고심까지 다섯 차례나 재판을 받았다.

결국 이날 노 의원의 유죄가 확정됨으로써 'X파일'을 둘러싼 노 의원과 검찰의 줄다리기는 노 의원의 판정패로 막을 내렸다.

노 의원은 이날 판결에 대해 "뇌물을 지시한 재벌그룹 회장, 수수를 모의한 간부, 전달한 사람, 뇌물을 받은 떡값 검사들이 모두 억울한 피해자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한 저는 가해자라는 판결"이라며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