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기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제자가 보낸 세배 동영상에
감동이 온 몸에 밀려온다
큰절이 주는 공경과 정성의 무게
수십년이 지나서야 깨달아
절 올릴때면 몸을 굽혀 받으시던
고등학교 은사 떠올라


어린 시절 명절이나 방학에 할아버지 댁을 가면 절을 했다. 절을 받으시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덕담을 해 주신다. 놀다가 할아버지 댁을 떠나올 때도 절을 한다. 그럴 때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기대가 섞인 덕담을 해 주신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와 어머니께 또 절을 한다.

집에 친척 어른들이 오시면 아버지는 '얘들아 여기 와서 절 올려라' 하고 말씀하신다. 우리 형제는 앞으로 나아가서 절을 올린다. 어른들은 우리가 큰절로 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교육을 아주 잘 받은 '훌륭한 어린이'로 인정하는 것 같았다.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절의 마력인가.

아버지가 막걸리 한 잔 하시고 늦은 밤 함께 데리고 오는 아버지의 친구들에게도 우리는 어김없이 불려 나가서 큰절을 올렸다. 적절히 술기운이 도는 아버지의 친구 분들은 고놈들 기특하고 대견하다며 주머니에서 지전들을 꺼내어 주었다. 아무튼 우리 집안은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순간을 큰절의 예절 격식으로 차리기를 엄청 강조하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지금도 그런 집이 아주 없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데서나 찾아보기에는 어려운 풍경이다.

그렇게 절을 많이 하면서 자라기는 했지만, 나는 절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을 때가 많았다. 매번 몸을 구부리고 무릎을 꿇어서 절을 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집도 많은데, 왜 하필 우리 집은 이렇게 큰절을 많이 하는가 하는 불만이 있었다. 내가 절하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신기해 하면 나는 무슨 구경거리라도 된 것 같아서 좀 쑥스럽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큰절이란 의식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왜 우리 집은 쿨(cool)하지 못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이파이브 식의 인사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냥 고개를 숙여 '안녕하셨어요?' 하거나, 좀 애교를 피워 군대식 경례를 해도 귀여울 텐데, 그렇게 장엄한 큰절을 번번이 강조했을까.

간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는데, 이번 설에는 절과 관련해서 나에게 각별한 경험이 있었다. 스마트 폰 문자로 분주하게 설 인사들이 나도는 것은 근자의 풍속도이다. 그런 인사라도 오가지 않는 것보다야 물론 나은 일이지만, 더러 흔한 인사말 한 문장으로 수십 명 지인에게 똑같은 인사말을 한꺼번에 뿌리는 것은 좀 그렇다. 너무 사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사라면 나도 좀 심드렁하게 대해 오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또 어디선가 스마트 폰에 문자 하나가 왔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발신인을 보니 30년 전 내가 고등학교 선생 노릇할 때 우리 반 52번 하던 H군이다. 반가웠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었던 H는 그 무렵 무슨 일로 오해를 받아 학생지도부에 불려가서 날마다 매로 닦달을 당했다. 28살 신참 교사이었던 나는 H가 겪는 곤욕이 정도를 넘는다고 생각했다. 학생부장 선생에게 H를 내게 맡겨 달라고 했다. 학생부장은 담임인 내가 H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진다는 서약을 하라고 했다. 이후 H는 문초와 닦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나는 이듬해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 30여년 만에 나는 H를 만났다. H는 내가 떠나고 졸업할 때까지 너무도 힘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는 캐나다 어느 도시에서 호텔을 경영한다고 했다. 캐나다인 틈에서 그 지역 호텔협회 회장까지 맡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두 번이나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고초가 많았단다. 학창 시절 매로 닦달당하던 고생이 캐나다 이민에서의 역경을 이기게 한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원한을 은혜처럼 여겨서 자기를 다스리다니. 나는 그가 다시 보였다.

아무튼 H가 스마트 폰 문자로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하고 인사를 전해 왔다. 다소 밋밋한 기분으로 있는데, 잇달아 동영상 하나가 전해져 온다. 얼른 열어보니 감동이 온 몸에 밀려온다. H가 마고자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정성을 다하여 내게 세배 큰절을 한다.

특유의 과묵한 어투로 내 건강과 행복을 빌어준다. 나는 큰절이 주는 공경과 정성의 무게를 이제야 비로소 몸으로 체득한다. H는 이 순간 나의 제자라기보다 마치 내 선생처럼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나의 고등학교 은사이신 학암(鶴庵) 선생은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절을 올리면 그냥 받지 않으시고 당신도 몸을 굽혀 우리들 절을 받으신다. 그건 또 얼마나 멋이 우러나는 사제 간의 풍경인지. 아니 그런 생각을 왜 나는 여태 해 보지 못했는지.

H에게서 동영상 큰절 세배를 받고, 나는 설날 아침 여든이 넘은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하여 큰절 세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 세배를 받았다. 내게 절을 하는 아이들의 절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절 자체가 언젠가는 공경과 정성의 예를 스스로 심어 줄 것이다. 큰절 잘 하고 자란 아이들 치고 막되지 않는다. 아이들 세배를 다 받은 다음, 우리 사형제 내외는 원을 그리고 둘러서서 서로 맞절을 했다. 늙은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참, 보기에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