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력'·'기이' 권1·권2에 해당
고대사 연구 가장 중요한 자료
왕력은 고대왕들의 정보를
재위 순서대로 기술한 연대력
잘못된 사실 수정·보충 기대
조상의 삶과 얼이 서린 흔적과 유무형의 유산을 찾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을 연구하여 역사를 복원하고, 또 오늘날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찾아 정립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며, 한편으로는 나아갈 바를 미리 짐작해 볼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까닭에 정치와 경제가 발전할수록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높아지는 것이다.
얼마 전에 파른 손보기 교수의 유족은 소장하고 있던 새로운 삼국유사 1책 목판 인쇄본을 공개하고, 연세대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기증된 1책은 삼국유사의 '왕력'과 '기이' 권1과 권2에 해당한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는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 연구에 가장 중요한 기본자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유사 판본은 몇 종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 일연 스님에 의한 초간본의 간행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뒤에 제자 무극이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다.
조선 초기에도 삼국유사의 간행이 있었지만 정확하게 언제, 누가, 어디에서 찍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 오직 중종 7년(1512) 경주에서 간행되어 흔히 '중종임신본' 또는 '정덕본'이라 일컫는 것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이 판본의 끝부분에는 중간 경위를 밝힌 발문이 붙어 있으며, 당시 경주부에는 옛 책판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한 줄에 겨우 네 다섯 자를 읽을 수 있을 만큼 마멸이 심하여, 완전한 인본을 구해서 책판을 개간하였다. 이 '중종임신본'의 간행본 몇 종이 현재 전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어쩌면 고려 말이나, 늦어도 조선 초기에 찍었을 것으로 보이는 판본이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알려졌을 따름이다. 이번에 공개한 파른본은 삼국유사 1책이 빠진 것이 없이 완전한 상태이며,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초기 간행본 권2와 완전히 같은 판본이 확실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삼국유사의 여러 판본 중에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파른본보다 간행시기가 앞서는 판본이 발견된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파른본 삼국유사의 왕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삼국유사는 전체 5권으로 되어 있으며, 5권 내에 다시 9편으로 편제되어 있다. 이중 '왕력'은 고대의 신라, 고구려, 백제,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의 왕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재위한 순서대로 기술한 일종의 연대력이다. 파른본 삼국유사의 '왕력'은 중종임신본 이전에 나온 유일한 '왕력'이다. 삼국유사 '왕력'으로 기존에 널리 이용되는 중종임신본에는 글자의 탈락이나 또는 잘못 새겨진 곳이 제법 있어서, 읽는 사람에게 착종을 일으키게 하거나 사실을 이해함에 혼란과 어려움을 주고 있었다.
이런 처지에 파른본 왕력이 찾아짐으로써 한국 고대사, 특히 각 나라 왕실의 조상과 계보 등에 대해 기존에 잘못 알려지거나 알 수 없던 사실을 수정하고 보충해 줄 것이다. 아마 이 분야 연구에서 난제가 상당히 해소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파른본 삼국유사 왕력은 그 내용이 알려주는 정보 가치가 매우 중요하며, 또 인쇄출판과 서지학적 의미 또한 지대하여 가히 국보급으로 평가하겠다.
오늘날 우리 학계에는 자료 이용의 어려움 때문에 연구가 힘들고 미진한 분야가 많다. 참된 우리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한국학'이 특히 그러하다. 한국학을 발전시키고, 분야간 융합및 균형 발전과 활성화하려면 연구에 필요한 자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유산과 자료 찾기가 중요하다.
아울러 선행 연구자가 고생하며 자료 찾기를 한 과정과 그 결과 및 찾은 자료는 공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후행 연구자가 동일한 자료를 찾기 위해 같은 시간을 낭비하며 노력을 되풀이하지 않고, 이미 찾은 결과와 자료를 활용하여 다음 단계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파른본 삼국유사 왕력에서 보듯이 한국학 연구가 한층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료가 나타나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문화유산과 자료 찾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