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전 가족과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22일 교내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퇴임 전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둘러보며 소감을 전했다.

한때는 '대학 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강도 높은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대학을 독선적으로 운영했다며 내부 구성원들의 비판을 받았다.

겉으로는 자진 사퇴의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 물러나게 되면서 중도 사퇴한 전임자 러플린의 전철을 밟게 됐다.

◇ 테뉴어에서 차등 등록금까지…개혁의 '아이콘' = 2006년 7월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후임으로 부임한 서 총장은 교수와 학생 사회에 개혁의 바람을 몰고 왔다.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맡을 당시 학과 교수들의 절반을 갈아치우는 강도 높은 개혁을 실시했던 서 총장은 우선 교수의 정년을 보장하는 일명 '테뉴어'에 대한 심사를 강화했다.

이어 2007년부터는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내도록 하는 '차등적 등록금 제도'를 실시했다. 이전까지 KAIST의 모든 학생들은 기성회비를 제외한 학비를 면제받았다.

또 학부 수업을 100% 영어로 강의하도록 조치했으며,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잠재력과 성공 가능성을 보인 일반계 고교생을 선발했다.

뛰어난 연구 성과와 고액 기부자 유치도 대표적인 실적으로 꼽힌다.

총장이 아이디어를 내 시작한 온라인 전기자동차(OLEV)는 오는 7월 경북 구미에서 상용화를 앞두고 있고, 다보스포럼이 선정한 세계 10대 유망기술에도 뽑혔다.

모바일 하버(움직이는 전기자동차) 역시 미국 조지아주와 사업화 논의 단계에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 CO₂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한 것도 괄목할 만한 성과다.

2008년 원로 한의학자 류근철(82) 박사가 578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하고 이듬해에는 김병호(68) 서전농원 대표가 300억원의 부동산을 쾌척하는 등 재임 기간 사상 최고의 기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2010년 7월 열린 KAIST 이사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독선적 리더십'으로 추락 = 탄탄대로였던 서 총장의 앞길에 그늘이 드리운 건 2011년 초.

그해 1월부터 학부생들이 잇따라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렸다.

일방통행식 개혁이 잇따른 학생 자살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소통 부재', '독선적 리더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교수 임용과정에서의 특혜 의혹, 특허 도용 논란 등이 불거지며 교수 사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을 두고 교수 사회가 '이방인'의 개혁 리더십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1936년 경북 경주 출생인 서 총장은 서울사대부고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7월 KAIST 총장에 영입됐기에 국내에는 학맥과 인맥이 없다.

서 총장에 대한 비판이 과학계의 국내파 대 해외파, 경기고 대 비경기고, 서울대 공대 대 카이스트 등 학맥 및 인맥 갈등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6년 서 총장의 전임이었던 로버트 러플린(노벨물리학상 수상) 총장도 개혁을 지휘하다 교수들의 집단퇴진 압력을 받고 임기 2년을 남기고 중도 사퇴했었다.

결국 서 총장도 겉으로는 자진 사퇴 형식이지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난 러플린의 전철을 밟게 됐다.

◇강성모 신임 총장 부임…남은 과제는 = 오는 27일 KAIST 신임 총장으로 강성모 전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전 총장이 부임한다.

강 신임 총장은 한인 1세로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와 뉴욕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UC버클리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총장이 돼 한국인 최초로 미국 4년제 대학 총장이 됐다.

후임 총장은 교수협과 총학생회 등 학내 구성원들과의 갈등을 봉합하고, 개혁에 대한 피로감을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테뉴어(정년보장심사)나 전면 영어강의 등 서 총장이 추진해왔던 개혁의 긍정적인 측면들은 계승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외부인인 신임 총장이 구성원들의 화합을 이뤄내면서 차질없는 개혁을 추진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