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지 보고 베꼈다" 헛소문
식당가면 매일 숟가락맞기
휴학한뒤 2년간 심리치료
가해학생 '봉사처분' 그쳐
올해 16살로 고등학교 입학을 해야 할 미경(16·여·가명)이는 아직 중학교 1학년도 마치지 못했다. 3년전 '왕따'가 돼 친구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후 학교를 휴학한 채 정신과 병원을 오가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새우고 있다.
사춘기 시절 겪었던 공포와 충격은 미경이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여전히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거부하며 집안 구석에 쪼그려 앉아 괴성을 지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미경이 가족들도 가해자들과 싸우느라 생계조차 포기한 채 집안이 풍비박산났다. 미경이 어머니는 "왕따로 우리 아이와 가족의 삶은 철저하게 파괴됐다"며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이 별 미안함과 수치심 없이 멀쩡히 살아가는 걸 보면 분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미경이에게 평생 상처가 된 사건은 3년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지난 2010년 용인 소재 N중학교에 입학한 미경이는 중학생이 된 설렘을 느끼기도 전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됐다.
수업시간에 책 뒷면 답지를 보고 베꼈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나면서 미경이의 고된 학교생활이 시작됐다. 학교내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이내 '도둑질을 하는 아이', '더럽고 냄새나는 아이'로 낙인찍혔고, '감염자', '절대자'라는 별명도 뒷따랐다.
미경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거미'가 종종 책상위에 올려져 눈물을 터뜨리게 했고, 학교 식당에서는 의식행사처럼 친구들이 숟가락으로 미경이를 때리며 지나갔다. 교실에서는 슬리퍼가 그 도구였다.
욕하고 때리는 친구들과 마주치면 겁에 질려 오줌을 싸기도 했다.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서른 명도 넘는 아이들을 관리해야 하는 내가 너 하나에 매달릴 순 없다"는 차가운 답이 미경이를 더욱 상처입게 했다.
그해 11월 미경이는 학교를 휴학했다. 이후 줄곧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수원의 한 대학병원 정신과를 오가며 2년 넘게 심리치료를 받았다. 미경이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됐던 15명의 학생들은 학교와 법원 모두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라는 명목아래 '봉사활동' 처분을 받았다.
미경이의 인생은 철저하게 파괴됐지만, 그동안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돕기 위한 정부와 경기도교육청 차원의 대책도 전무해 2차적 상처를 남겼다.
경기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 관계자는 "학교폭력 가해행위들은 쉽게 잊혀지는 반면 여린 맘에 입은 상처는 영원한 피해로 남게 된다"며 "장기적 피해 회복 프로그램 등 사회와 교육기관들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태성·강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