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상록 정치부장
대중의 선택에 의해 거취가 결정되는 정치인에게 지지율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이 아무리 정당하다해도 국민이 원치 않으면 독선으로 내몰리기 십상이고, 무작정 '국민의 뜻'만 좇다가는 곧잘 포퓰리즘으로 매도되곤 한다. 가뭄에 콩나듯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몇몇 정치인들의 '소신' 역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고도로 계산된 인기몰이 수단이었던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정치인의 지지율이 곧 그의 정치적 성패와 직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최근 에콰도르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경우 오일달러를 이용한 사회인프라 확대정책으로 국민적 인기를 끌었지만, 서방의 눈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처럼 더 많은 개발이익을 위해 외국기업을 압박하고 비판적 언론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독재자, 폭군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두 정당이 '정치인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자'거나, '세금사면'을 단행하겠다는 식의 공약으로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혹한 긴축재정에 치솟는 실업률, 부정부패로 점철된 국가의 장래 따윈 안중에 없어 보인다.

위정자가 자신의 실정을 감추고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자주 써먹던 수법이 바로 '우민화 정책'이었다. 로마시대 폭군들이 검투사들의 피로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면, 북한 정권은 핵개발을 통해 도탄에 빠진 민생의 불만을 잠재우고 있다. 과거 우리 정권들이 프로 레슬링과 프로야구 같은 스포츠를 붐업시키며 국민을 열광케 했던 것도 어느정도 맥이 닿아있다.

25일 출범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4%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취임식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발표된 수치로, 취임 당시라는 시점만 놓고 보면 역대 최저 수준이다. 과거 우리 대통령들이 대선에서의 득표율을 훌쩍 뛰어넘는 높은 지지율 속에 취임했던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불과 70일 남짓 만에 자신의 득표율을 7% 넘게 까먹은 채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국회의원 시절, 대선 후보 시절 내내 보여줬던 원칙주의 이미지를 감안하면, 새 대통령이 이같은 지지율 하락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을 테지만 썩 유쾌한 출발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지율 자체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지지율 하락의 이유들이다. 부정적 평가자의 절반 이상이 '인사 잘못'을 꼽았고, '국민과의 소통 미흡'을 원인으로 제시한 응답자도 10%가 넘었다.보안이 유지되지 않은 인사는 불필요한 잡음을 양산하고 인사권자의 권위를 손상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반대로 밀실인사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고 자칫 독단으로 흐른다. 야권의 발목잡기 때문이라 하소연하고 싶겠으나, 국민들은 인사 잘못이 새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스타일, 불통 이미지에서 비롯됐다고 본 듯하다. 여기에 대통령을 위해 쓴소리를 할 인물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예스맨' 일색으로 짜여진 듯한 차기정부의 인적 구성도 지지율 하락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축복과 환호속에 출범해야 할 새 정부가 조각도 채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려속에 시작한다. 낮은 지지율에서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를 필요이상 걱정하고 폄훼해서는 안될 일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새 대통령이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80%를 넘나드는 폭발적 지지율에서 출발해 한자릿수 지지로 임기를 마무리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은 '시작은 미약하되 끝은 창대한 대통령'이 돼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새 대통령, 새 정부가 일시적 지지율 하락에 좌고우면해서는 안되겠지만, 국민들이 뭐라고 한들 내 갈길만 간다는 식의 독선은 더 곤란하다. 지지율로 표출되는 민심은 변덕이 심하고 즉흥적이되, 또한 냉정하고 준엄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더없이 '겸허하게' 출발해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