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
옷차림은 예를 갖추는 수단인데
몸에 딱 달라붙어 민망할 정도
'밥상머리 예절'은 사라져 가고
가족들 함께식사 기다릴줄 몰라
이웃간 콘크리트벽 소통 차단
'우리'라는 공동체의식 아쉬워


며칠 전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다가 마침내 살해까지 부른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갈등과 분쟁이 어느 한 집에 국한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이참에 오늘날 의식주문화에 대해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옷을 입는 걸 보면 옷이 몸에 달라붙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요, 아마도 건강에도 안 좋을 듯하다.

먹는 걸 보아도 아쉬움이 남는다. 공공의 장소에서 맛있는 게 있으면 욕심을 내고, 집안에서도 함께 먹기 위해 기다리는 일이 흔치 않다. 거주의 양상을 보면 단독주택이든 아파트든 이웃이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되어 있고, 집안에서도 각자 방에 들어가 자기만의 생활을 하고 있는 편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예를 표현하는 수단인 복식을 통해서 자신의 반듯한 마음가짐을 표출하고자 했다. 특히 상하가 분리되는 우리의 옷차림은 위아래가 하나인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와 달리 신체의 선이 드러나지 않는 만큼 활동하기에 편리하고 서양옷처럼 몸에 딱 붙지 않아 생활하기에 적합한 구조다. 물론 이는 좌식생활에 맞는 것이었으며, 이런 풍성함은 여유로움과 고상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에 꼭 맞게 옷을 맞추는 여성들더러 우리들은 박복하다고 했다.

양복·양장은 몸에 맞지 않으면 표가 나서 못 입지만 한복은 웬만큼 차이가 나도 입을 수 있다. 넉넉하게 마른 옷은 개인의 소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우리' 옷이 된다. 이런 옷에 대한 개념은 자연스럽게 '옷물림'의 습속을 낳았다. 딸이 시집갈 때 어머니가 몇 달을 걸려 누비바지를 지어주면 그 딸은 다시 딸에게 전수했다. 사내아이들이 장성해서 아버지 옷을 물려받을 때는 축하의 잔치를 베풀었다.

우리의 음식문화는 자기 접시의 음식만을 거두는 서양방식과 달리 맛을 함께 공유해 왔다. 찌개 같은 경우, 아예 서로의 숟가락을 그릇 하나에 넣고 휘저으면서 먹는다. '숨어서 음식을 먹으면 감기 든다'고 하는 금기어도 있다. 그릇에 남아 있는 음식 한 점을 서로가 쉽게 가져가지 못하는 것도 집단의식을 함부로 깨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한솥밥'이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을 만큼 별다른 음식이라도 생기면 항상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옛말에 '예절은 밥상머리에서 배운다'고 했다. '음식 먹을 때 잔소리 많이 하면 가난해진다'고 했던 것도 예의범절을 중시한 데서 나온 말이다. 손님이나 어른들에게 먼저 쌀밥이나 맛있는 반찬을 올리고, 웃어른이 먹던 밥상을 물려 아이들이 먹는 '상물림'의 관습이 있었다. 해방 이후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더라도 가장이 수저를 들 때까지 자녀들은 기다리는 편이었다.

한국의 가옥은 서양처럼 두꺼운 벽과 문으로 철저히 단절된 구조가 아니다. 마루와 방, 방과 방이 종이 미닫이나 장지문으로 되어 있어 살짝 밀면 열리고 닫아도 말소리가 다 들린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건기침 문화도 발달했다. 개방과 소통의 기능은 대청마루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청마루는 스스로 열린 공간이면서 방과 방을 이어줌으로써 폐쇄적인 공간마저 열린 공간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한옥에는 벽에 붙은 창뿐만 아니라 문이 과다할 정도로 많은 편이다. 그만큼 창과 문이 소통과 개방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넓은 마당은 햇빛을 집안에 들이고 바람의 통로가 되는 자체의 열린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외부와 내부,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기능을 함으로써 개방과 소통의 중심 역할을 한다. 마당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넓고 빈 공간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열린 공간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존재이다. 울타리나 대문은 집에 조화되며 사람을 위압하지 않도록 밝게 열린 공간에 기여했다.

우리나라만큼 '우리'라는 말이 발달한 나라도 없다. 우리는 나의 남편 나의 아내조차 '우리남편', '우리집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다. 원래 우리가 지닌 공동체정신을 살려 모두 열린 의식으로 소통하는 삶을 가꾸었으면 좋겠다.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