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달력은 돈 쓰는 연인 기념일로 꽉 차 있다'고 보도한 건 2006년 1월 2일자 로이터통신 서울발 기사였다. 연인에게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다이어리데이(1월), 밸런타인데이(2월), 화이트데이(3월), 연인 없는 남녀가 만나 자장면 먹는 블랙데이(4월), 옐로데이-로즈데이(5월)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했고 이 밖에도 연인끼리 초록색 옷을 입고 숲을 거니는 그린데이(8월 14일), 은으로 만든 선물을 교환하는 실버데이(7월 14일)도 있고 긴 과자를 교환하며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롱 다리가 되라'는 빼빼로데이까지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첫 만남 또는 첫 데이트 후 날짜 수에 따라 100일 200일 300일, 1천일도 기념하고 따라서 e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기념일들을 미리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한 가지 빠뜨린 건 11월 8일 브래지어데이다. 11은 끈, 8은 브래지어를 세운 형상이다.

대한민국에만 재밌는 기념일이 많은 건 아니다. 빼빼로데이가 중국에선 엉뚱하게도 독신절(光棍節:꽝꾼지에)이다. 곤(棍)자가 몽둥이니까 '光棍'은 빛나는 몽둥이, 즉 남성을 상징한다는 것이고 그 날이면 남성 독신자들이 11월 11일을 상징하는 길쭉한 찐빵 네 개씩을 먹는다는 것이다. 두부를 먹는 날은 또 9월 15일이다. 인류사상 처음 두부를 만든 한(漢)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탄신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하나와 하나가 합쳐 둘이 된다고 해서 11월 22일은 부부의 날이고 2월 22일은 '야옹야옹'이 아니라 '냔냔냔'거린다고 해서 고양이날인가하면 11월 1일은 '완완완' 짖는다는 개의 날이다.

팬티만 입고 지하철 타는 노 팬츠데이가 미국서 시작된 건 10년 전이고 '가장 멍청한 질문을 하는 날'인 9월 28일은 1980년대부터다. 그 날이면 '인도코끼리를 통째로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달팽이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따위 질문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우리 연인들이 주머니를 털어 여심(女心)을 사로잡는다는 화이트데이가 오늘이다. 잘들 사로잡고 잡혀 white day(좋은 날), 광명천지를 후회 없게 마음껏 만끽하기를 바란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