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비싸도 제한적 책임만 있어
사업권 확보 '출혈경쟁' 사활
결국 분양가에 전가 소비자 부담
적정규모 자기자본 비율 늘리고
지자체 겹규제·분담금 줄여야
최근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한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표류하면서 기존 사업방식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사업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 Project Financing)이라는 금융기법과 공개적인 입찰경쟁을 통해 민간회사들이 사업권을 획득해서 추진하는 이른바 공모형 PF사업으로 추진된 것들이다.
PF사업이 새로운 부동산 금융기법인양 한동안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사업관련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토지를 보유한 공공기관은 경쟁입찰방식을 통해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실제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코레일 소유의 토지가격이 당초 3조8천억원에서 서울시가 한강르네상스사업과 연계한다는 발표 이후 5조8천억원으로 치솟았고, 민간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8조원으로 급상승했다. 개발 사업에서는 적정한 토지가격이 중요한 관건임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기대감과 치열한 경쟁으로 토지가격 상승이라는 위험한 사업구조를 야기한 꼴이 되어 버린 셈이다.
민간 사업자들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부채(簿外金融)로 자금조달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담보책임이 없거나 제한적인 책임만을 지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높은 토지가격도 마다않고 일단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제살 깎아 먹는 식으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금융기관은 대출채권을 자산시장에 유동화 하는 형태로 직접대출 혹은 투자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사회간접시설(SOC) 사업에 이용했던 금융방식을 변형시켜 개발 사업에 무리하게 적용하였다.
선진국과는 다른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자본조달 방식도 문제다. 자기자본은 토지계약금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타인자본에 의존하는 구조이고, 게다가 건축비용 등을 선분양 대금으로 충당하다 보니 요즘과 같이 부동산시장이 침체될 경우 분양 위험성에 직면하게 된다.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는 최소한 토지비(전체 사업비의 약 30%내외)만큼은 자기자본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사업계획도 여기저기 허점투성이이다. 부동산 시장의 여건과 자금조달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장밋빛 그림에 불과한 설계와 계획들이 난무하고,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며 외국의 유명 건축가를 들먹이는 허세를 부리지 않았던가? 경기하강, 금융경색 등 시스템적 위험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동시착공 후 준공이라는 일괄개발 방식만을 고집하던 관행도 문제였다. 통큰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고 적정 규모로 단계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사업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공공도 자유로울 수 없다. 과도한 개발규제와 각종 부담금은 분양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분양가가 높아지면 결국 분양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규제비용을 개발사업자가 부담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양가 혹은 임대료에 포함되어 소비자가 부담하는 몫이 된다. 기반시설 설치의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그 부담을 사업시행자에게 떠넘기는 이른바 무임승차 관행도 사업성을 크게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제는 개발사업에 대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영세한 자기자본으로 타인자본에 의존하는 높은 부채비율로는 경기변동과 금융환경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운영을 감안하지 않고 선분양을 통한 사업비 회수에 급급한 구조로는 사업위험을 피할 수 없다. 과열경쟁에 따른 토지가격의 과다 책정과 과다한 사업계획, 그리고 지자체의 불합리한 규제가 상존하는 한 개발사업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서충원 강남대 교수·산학협력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