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김춘추가 왜에 다녀온 이유는 ?
백제 침략으로 위기 직면
고구려 청병 요구도 거절당한 탓
왜 친당 목적과도 맞아 가교역할
창작물이라도 대중매체 감안
정확한 역사전달위해 보완 필요


신라시대 김춘추를 주인공으로 한 '대왕의 꿈'이란 TV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얼마 전에 방영된 것 중, 김춘추는 백제의 침공을 받아 대야성 전투에서 딸 고타소랑과 사위 김품석이 죽음을 당하자 복수하기 위해 고구려를 방문하고, 곧이어 바다 건너 왜국에 다녀온 내용이 있었다.

김춘추가 고구려에 가서 연개소문을 만나 청병을 했으나 실패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김춘추의 왜국 방문은 기록이 있음을 대부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설령 안다고 해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왜의 개신정권은 '임나의 조'를 끝내기 위해 효덕천왕 2년(646) 박사 고향흑마려를 신라에 보내어 인질을 보낼 것을 요구했고, 이듬해(647) 김춘추가 왜에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만 보이는 임나의 조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일 양국 고대사 연구자들간에 가장 논쟁이 심한 것이다.

임나일본부와 임나의 조가 실재했던 것이라고 하면 김춘추가 왜에 간 사실을 인질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임나의 조가 일본이 만든 허구거나 또는 일방적 명분에 그치는 것이라면 김춘추가 일본에 간 것은 실제 인질이 아닌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의 연구자들 간에는 임나일본부나 임나의 조가 허구이고 김춘추가 일본에 갔다는 기록 자체를 거짓이라고 보는 주장과 임나의 조는 거짓 내지 명분에 불과하지만 김춘추가 일본에 간 것은 사실이라고 보는 주장으로 나뉘어 있다.

신라는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김춘추의 고구려 청병이 실패하여 당시 백제의 대대적인 공세에 시달리면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한편 왜국에서는 645년 6월 중대형 황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친백제의 소아씨 가문을 타도하는 을사정변이 있었고, 효덕천황이 즉위하여 황족 중심의 개신정권이 들어섰다. 개신정권은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수립을 도모하고자, 당의 선진적 정치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 방법으로 소아씨 세력을 제거한 개신정권은 646년 고향흑마려를 신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고, 이에 답하여 647년 김춘추가 반송사로 왜에 건너갔다. 이렇게 파견된 신라 사신 김춘추를 왜는 국내적으로는 인질이라 하여 사실과 달리 허구로 기록한 것이다.

김춘추가 왜에 건너간 것은 왜가 신라에 반송사를 요청함에 자원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춘추는 당시 신라가 백제 침략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또 대야성의 패전으로 자기 가문의 명성이 실추되었으며, 게다가 직접 고구려에 청병을 갔으나 이 또한 실패하였다.

이러한 상항에서 왜로부터 신라는 사신 파견 요청을 받았으며, 김춘추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공격을 받아 외로이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하고자 혹여 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가늠하고, 또 왜가 백제와 연계할 가능성 등 왜의 국내 정세를 알아보면서, 한편으로는 추락한 자기 가문의 위상을 회복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스스로 원했을 것이다. 김춘추가 일본에서 돌아온 뒤, 648년에는 신라 사신이 일본의 국서를 가지고 당나라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것은 왜가 당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친당적인 신라에 중개를 청한 것이며, 결국은 김춘추가 입당하여 왜와 당의 우호 성립에 큰 역할을 하였다.

역사 드라마도 창작물이다. 그 소재를 역사에서 빌려왔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작가의 창작물이다. 이런 이유로 이 드라마에서는 왜 조정이 김춘추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중대형 황자가 정변을 일으키는 등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가공의 내용이 방영된 것이다.

시청자들은 김춘추가 왜에 다녀온 이야기에서 보듯이 드라마의 내용 중 어떤 것이 역사 사실이고, 어떤 것이 작가가 창작한 허구인지 몰라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비록 역사드라마가 창작물이기는 하나, 현재 학교에서 역사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대중매체가 그 상당한 구실을 하는 만큼,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역사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도 보완될 필요가 있다.

/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