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클래식 역사 첫 사례
내달6일 도문화의 전당 연주회
거장 펜데레츠키의 제자
믿음 줄수 있는 성실한 음악
관객과 '즐거운 공감' 노력


지난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카잘스 페스티벌 인 코리아. 첫곡 '현악사중주'의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 있던 한 남자가 무대로 올라가 연주자와 청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현악사중주'의 작곡가 류재준(사진)이다.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등 역사 속 거장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치중한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현실에서 그의 등장은 다소 생소하면서도 감격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음악 작곡가를 만나는 것도 드문 일인데, 그의 작품이 세계적인 음악축제에서 연주되다니.

2002년 '타악기를 위한 파사칼리아'로 유럽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2007년 초연된 '진혼교향곡(Sinfonia da Requiem)'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동안 해외 클래식 무대에서 주목받았던 류재준 작곡가는 최근 국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9~2010년에는 서울 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선임됐고, 지난해부터는 60년 전통의 국제 음악축제인 '카잘스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4월 6일에는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작곡가 류재준의 밤'이라는 연주회가 열린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기획한 이번 연주회는 오로지 그의 곡으로만 채워진다. 국내에서 현재 활동중인 우리나라 작곡가의 작품만으로 연주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2일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만난 작곡가 류재준은 이번 연주회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제 곡만 연주하는 음악회도 처음이지만, 한국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는 데 기대가 큽니다."

그의 기대는 작곡가로서 궁극의 목표를 '사람들과 음악을 통해 교감하는 즐거움'에 두고 있는 것과 연결된다. "처음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일상의 언어가 아닌, 형이상학적인 형태로 감정의 전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말이 아닌 음표라는 인간이 가진 다른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하고 싶어서 고3때 진로를 바꿨어요. 탐구하는 자세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을 얻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얻습니다.

음악은 학문이 아니라 청중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는 마법같은 것이죠. 경기필을 통해 국내 청중과 어떻게 교감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24살에 유학을 떠난 그는 폴란드의 '음악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현대 작곡의 거장 펜데레츠키의 제자가 됐다. "5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현재 작곡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저 혼자뿐입니다.

한국에서 수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음악을 배웠다면, 그와는 2년동안 전세계를 함께 다니며 마음으로 음악을 보고, 듣고, 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저에게 강조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믿고, 그 믿음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음악에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의 가르침을 흡수하는데는 그 뒤로 10년이 더 걸렸어요."

스승 펜데레츠키의 가르침을 받은 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를 통해 자신의 곡을 알린 류재준 작곡가는 지난 2006년 한국에서 '앙상블오푸스'를 결성했다. "한국에 정통적 해석력을 가진 앙상블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푸스를 만들었어요. 악보가 손에서 떠나면 그때부터 그 곡은 작곡가의 것이 아니에요.

연주자의 해석을 통해 관객과 만나게 되죠. 그런데 '독창적인 해석'이라는 말로 너무 작곡가의 의도나 음악적 전통과 멀어진 연주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앙상블오푸스는 연주회를 앞두고 하루에 8시간씩 20일동안 연주를 한다고 한다.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완벽하고 치밀한 그의 성격때문이다.

오푸스는 류재준 작곡가에게 여러모로 큰 재산이다. 국내 활동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가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8년간 교제 끝에 지난해 결혼한 그는 자신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을 아내라고 말했다. "아내를 만난 후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됐어요. 아내의 조언에 따라 곡을 수정하기도 하죠."

작곡가란 '시대를 새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필과의 연주회를 끝내면 바로 앙상블 오푸스의 공연이 이어진다. 4월 12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과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노스텔지어 콘서트'에서 그의 피아노 삼중주 '초여름'이 연주된다.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카잘스페스티벌을 열 계획입니다. 특히 수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국내 유망한 오케스트라가 둘이나 있는 곳이잖아요. 올해 다시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게 됐고, 신인 발굴에도 노력할 계획이에요. 무엇보다도 한국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저의 곡이 많이 연주되길 바랍니다."

/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