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바다 쪽으로 10㎞가량 떨어진 한국가스공사 인천생산기지(LNG기지)에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LNG기지는 송도국제도시와 일종의 교량 역할을 하는 너비 7m의 2차로 도로(LNG진입도로)로만 연결돼 있기 때문에 너구리 등의 번식경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래픽 참조
지난 23일 오후 2시께 연수구 송도동 348 일원 한국가스공사 LNG기지 4지구. LNG 설비지역과 대림산업 소유의 골프장 부지 사이에 위치한 갈대숲 곳곳에서 야생동물의 흔적이 발견됐다.
솔방울 모양의 고라니 배설물, 한 곳에 뭉쳐 있는 특성을 가진 너구리 배설물 등이 눈에 띄었다. 너구리의 발자국도 갈대숲 곳곳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들 배설물과 발자국 사진을 본 국립생물자원관 서문홍 연구사(포유류 전문가)는 "배설물이 한 군데 모여 있는 점, 발자국에서 발톱을 볼 수 있는 부분, 발자국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점 등을 볼 때 너구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며 "솔방울 모양의 배설물을 봤을 때 고라니도 서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갈대숲 속 웅덩이에는 너구리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메기, 붕어 등 민물고기가 가득하다는 것이 가스공사 직원들의 얘기다. 웅덩이 주변에는 낚시꾼들이 갖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낚시의자와 뗏목도 있었다.
인천생산기지 관계자는 "지난해 태풍이 왔을 때는 민물고기가 도로변에 가득했다. 하수로까지 민물고기가 차서 직원들이 나서서 치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가스공사 내에서는 계속해 출몰하는 너구리로 인해 설비 고장이 일어날 수 있다며 '너구리 퇴치령'까지 내린 상황. 너구리가 4지구뿐만 아니라 LNG기지 내 설비지역에도 출몰한다는 것이 가스공사 직원들의 전언이다. LNG기지 관계자는 "직원 대부분이 너구리를 목격했고, 설비지역에서도 여러 차례 봤던 점 등으로 미뤄 너구리만도 수십마리는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근에 건설 중인 오렌지듄스 골프장에서 일하는 인부 가운데서도 고라니를 봤다는 사람이 많다.
한 공사장 인부는 "포클레인 작업을 하는데 고라니가 뛰어나가는 것을 봤다"며 "수십년간 야외에서 작업을 하며 각종 야생동물을 봤다. 고라니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이들이 어떻게 LNG기지까지 갈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8.7㎞ 길이의 LNG진입도로를 따라 너구리 등이 들어왔다는 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LNG기지와 바다로 7㎞가량 떨어진 안산시 대부도에서 헤엄쳐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태풍이 왔을 때 물에 휩쓸려 떠내려온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관계자는 "서산 간척지 등에서도 너구리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이곳은 그나마 야생동물이 이동하는 환경이 편했다"며 "유입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LNG기지까지 너구리 등이 번식하게 된 것에 대해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