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여가 수요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문화정책의 과제이겠다. 농촌 마을과 협력하여 저비용의 가족단위 체험형 여행프로그램, 환경운동단체들이 시도하고 있는 이동거리와 비용을 줄인 친환경 여행 프로그램, 그리고 여행지의 역사, 문학, 예술 테마를 여행과 결합시킨 역사·예술기행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런데 대안적 여행 프로그램의 개발보다 여행과 관광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되돌아봐야겠다.
'질주하는' 우리의 여행 문화! 여행상품의 숨가쁜 일정표는 물론 길을 나서면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욕심'이다. 여행지에서 다음 경유지를 향해 출발을 독촉하는 가이드, 다음 경유지를 향해 바삐 발길을 돌리는 한국 관광객들의 여행문화가 외국인들에게 이색적 구경거리이다. 사실 정상 정복에 급급하면 등산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 일상에서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어야 할 여행도 성과주의의 강박증이 역력하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더 많이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주마간산 격으로 경유지를 훑고 지나간다면 오히려 한곳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길에서 보는 풍경과 풍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길을 떠난 나그네 자신이다. 찾아야 할 것은 바쁜 일상에서 잃어버린 자아이며 회복되어야 할 것은 노동으로 쇠약해진 자신의 영혼이다. 그러고 보면 여행지를 굳이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가까운 공원과 산, 도시 안의 마을도 여유롭게 걸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되도록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고, 또 먼 곳을 다녀온 사람을 만나면 부러운 마음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비용과 시간이다. 유럽이나 남미를 해마다 여행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이곳저곳을 일과 무관하게 시간을 내어 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화려한 외국의 관광지보다는 국내를, 자신의 삶터를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도시들을 섭렵하고도 정작 자기 나라와 도시, 이웃의 삶에는 청맹과니인 '내부실향민'이 될 수도 있다.
촬영 강박증에서도 벗어나야 할 듯하다. 여행지에서 기억과 느낌을 디지털 사진이 대신해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애써 다녀온 여행에서 '남는 것이 사진 뿐'이라면 너무 쓸쓸하지 않는가? 취재나 조사목적이 아니라면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맨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여행지를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길이 끝난 곳에서 여행이 시작된다'는 역설은 헝가리의 미학자 루카치가 현대 소설의 내적 형식을 진정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려는 문제적 인물의 내면으로의 여행 과정으로 비유한 데서 사용한 표현이다.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주인공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입증되지만, 주인공이 추구하던 조화로운 삶의 가치는 소설이 대단원을 내린 순간에 비로소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부상(浮上)한다는 것이다. 소설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길과 여행의 아이러니는 여행 자체를 설명하는 데도 유효할 듯하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